체육관으로 출근하니 아직 시간이 이르다.
밖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보면서 관찰을 해보니 걸음걸이가 조금씩 다르다는게 눈에 들어온다.
정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걷는 사람이 있다.
저 사람은 편두통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시력감퇴나 불면증까지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증상이 있는지를 물어볼수가 없었다.
혹시 실례가 될수도 있으므로..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그 사이로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신다.
"어떻게 오셨어요?"
"응, 좀 구경좀 해도 되지?"
할머니에게 의자를 드리고 아이들을 지도한다.
할머니가 계시므로 오늘 아이들의 척추 진단은 생략되고 모처럼 열심히 운동을 가르쳤다.
한 타임이 끝나고 다음 운동시간까지는 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있다.
할머니가 내게로 다가와 말씀하신다.
"총각~, 장가갔수?"
"어이구 할머니, 제가 몇살인데 벌써 장가를 가요?"
"몇살인데?"
"이제 스물 둘이에요."
"그럼 장가갈때가 되었네... 어디 참한 색시감 하나 소개시켜줄까?"
"아니에요. 아직은 생각 없어요."
"잘 생각해봐~."
할머니가 체육관을 나가신다.
오늘 처음 보는 할머닌데 결혼 이야기를 하시는게 좀 당황스러웠다.
두번째 타임의 아이들이 들어 온다.
들어오는 아이들을 나름대로 관찰해본다.
모든 아이들이 신발을 벗어서 정리를 할때 오른손을 사용한다.
이번 시간에 수련하는 아이들 중에서 왼손잡이는 없는것 같다.
아이들을 정렬시키고는 한사람씩 자연스럽게 걸어보라고 했더니, 뛰어가고 깨금발을 뛰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빙긍빙글 돌면서 장난을 치므로 걸음걸이에 대한 관찰은 포기를 했다.
아이들에게 발차기를 연습 시키면서 역시 오른발을 찰때 힘이 실린다는걸 느꼈다.
뒤돌려차기를 해보니 나 역시도 왼발보다는 오른발이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합기도의 낙법을 지도해봐도 오른쪽으로 구를때만 안정적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쪽의 수련만을 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균형이 더욱 한쪽으로만 발달이 되어 척추의 변형을 일으킬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을 하면서 몸이 균형을 잃는다면 오히려 수련을 안하는 사람보다 못한 결과가 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약국은 오늘도 한산하다.
약사님은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뭐 마실거 하나 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뭐가 궁금하지?"
"오늘 활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요추가 잘못되면 변비나 설사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배웠거든요? 특히 요추1번이 잘못되면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어떨때 변비가 나타나고 어떨때 설사가 나타나는지 숙제로 내주셨어요."
"음... 요추가 잘못되었을때 변비나 설사가 나타난다고? 그럴수도 있을것 같긴 한데 난 처음 들어보네.. 그런건 내가 가르쳐줄수 있는게 아닌데?"
"네..."
"그건 활법에 대한 이론이니까 활법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것 같애. 나는 모르겠는걸?"
"그럼 상완(上腕)이라는게 어디를 말하는건가요?"
"어깨에서 팔꿈치까지의 팔을 상완이라고 하지."
"아~, 그럼 팔꿈치 아랫부분은 하완이라고 하나요?"
"하하, 아니야, 팔꿈치에서 손목까지의 팔은 전완(前腕)이라고 해."
"그렇군요."
"어깨가 불편한 질병은 뭐가 있을까?"
"모르겠어요."
"일단 상완이 불편하고 통증이 있는걸 상완통이라고 하지."
"전완이 불편하면 전완통인가요?"
"하하, 그래. 전완통이라고도 하지."
"하하하."
"그리고 오십견이라는 질병도 있는데, 보통 오십대 나이가 되면 어깨가 불편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오십견의 증상이 특별한게 있나요?"
"어깨가 쑤시고 결리고.. 때로 팔을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네,,"
"일단 그정도만 알아 두고.. 집은 여기서 가까운가봐?"
"네, 낙산아파트 살아요."
"그렇구나, 활법은 왜 배우는거야?"
"저희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떨어져서 허리뼈가 옆으로 빠졌거든요,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고 하고, 한의원에선 약도 없다고 하는데, 수술은 좀 께름직 하구요.. 활법을 알면 그런걸 고칠수 있다고 해서요."
"효자네?"
"그런건 아니구요, 활법은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만 전수 한다는데, 마침 제가 운동을 했거든요."
"어떤 운동?"
"태권도도 했고 합기도도 했어요."
"몇 단?"
"태권도는 3단이구요, 합기도는 4단이요."
"와~ 그럼 보통사람들 서너명은 그냥 제압하겠네?"
"그런 얘기는 몇번 들었는데요, 그정도는 아닌것 같아요."
이때 또 손님이 들어와서 약사님에게 상담을 했으므로 나는 인사를 드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를 모시고 정릉에 있는 절에 갔다.
어머니는 진실한 불교 신자이다.
오전 법회에서 큰스님이 염불을 하실때 어머니는 뒤에 앉아서 스님이 독송하시는 염불의 모든 내용을 책도 없이 따라서 하실 만큼, 찬불가를 모르는 노래가 없을 만큼 엄청난 불교신도이다.
몸이 불편하셔도 걸을수만 있다면 일요일에는 항상 절에 가신다.
큰스님을 보자 어머니께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신다.
그 뒤에서 나도 큰스님께 합장을 하였다.
큰스님께서 나를 지그시 보시더니 한말씀 하신다.
"결혼 하지말고 혼자 살아."
나는 그 말을 그저 웃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오전 법회는 10시부터 12시 정도까지 이루어졌는데, 나는 그시간이 되면 경내를 돌아다니다가 법회가 끝나면 어머니와 함께 절에서 제공하는 점심 공양을 했다.
점심 공양은 밥에 여러가지 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 비빔밥이었다.
사람들은 맛있다면서 식사를 하지만 나는 특별하게 맛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점심 공양이 끝나면 어머니는 잠깐동안 다른 신도들과 담소를 나누시고는 절에서 나오기 전에 한번더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이분은 부처님이시고, 이분은 약사보살님, 이분은 지장보살님이시다."
어머니는 나에게 대웅전 안의 여러 부처님들을 가르쳐 주시지만 관심이 별로 없던 나는 절에 갈때마다 어느분이 어느분인지 모른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의 이야기가 더 믿을만했기 때문인듯 했다.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
아직 사회생활의 경험은 별로 없지만 웬지 스펜서의 말이 와 닿는다.
모든 사람이 제각기 혼자서 생활한다면 뭔가 삭막하고 불안하지 않을까?
또한 죽은 후의 세상을 여행하고 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은 다음은 어떻게 될지 두려울수도 있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