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서울에서 합기도체육관을 개관했다.
합기도 포스터를 만들어 전봇대에 붙이고, 현수막을 걸고, 간판을 걸면서 몇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련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바빴던 시간이 조금 느슨해졌을 무렵 나는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있다가 가위에 눌렸다.
그것도 대낮에 말이다.
손과 발이 마비가 되는듯 싶더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꿈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정말 난감했다.
체육관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후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분명 사람들이 대화를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너무 빨라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녹음을 해놓고 속도를 빠르게 틀어 놓은 것과 같이 말이다.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말소리는 조금씩 느려졌다.
조금만 더 느려지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할때 수련생 한명이 문을 열고 들어 오면서 가위눌림은 끝나버렸다.
이런 일들은 혼자 있을때마다 종종 발생했다.
누워있으면 가위에 눌리고,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있었다.
어떤때는 뭔가 내 앞을 휙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밤에 잠이 들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마치 TV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매일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꿈에 나타나는 다섯명의 여인들.
나이는 나보다 열댓살 정도 많아 보였는데,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여기는 우리가 사는 곳이야. 여기서 나가."
엄연히 보증금을 내고 월세를 내면서 운영하는데 나가라고 하니 싸움이 날 수 밖에...
나는 꿈을 꿀 때마다 다섯 여인들과 논쟁을 해야 했다.
몇달째 반복되는 꿈, 가위눌림이 계속되자 나는 체육관에 혼자 있기가 싫어졌다.
낮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고, 수련이 끝난 저녁 늦게는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잠을 청했다.
술이 취하면 꿈을 꾼건지 안꾼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낮에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수련시간이 되면 체육관에 들어갔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한 수련생에게서 이상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말은 다른 수련생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을 했다.
"요즘 이상한 이야기가 돌고 있던데 무슨 일이야?"
그러자 한 아이가 대답했다.
"체육관에 귀신이 있대요."
"누가 그래?"
"ㅇㅇ형이 봤대는데요?"
"이녀석들아,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어?"
"ㅇㅇ형도 봤다고 하구요, 또 ㅇㅇ형도 봤대요."
나는 지목된 학생에게 물었다.
"뭘 봤는데?"
"제가 낙법연습 하려고 일찍 체육관에 왔는데요, 하얀 한복 입은 아줌마가 저기 구석에 서있었어요."
나는 다른 학생에게 물었다.
"너는 뭘 봤어?"
"저도 혼자 있을땐데요, 하얀게 휙휙 지나가는데 정면으론 못봤구요, 이쪽을 보고 있으면 뒤쪽에서 뭐가 휙하고 지나갔어요. 분명 사람이었어요."
나도 경험을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귀신이 있다고 말할수는 없었다.
"너희들이 기가 부족해서 그래. 합기도를 더 많이 수련하면 그런거 안보여."
"에이~, 정말인데..."
"다른사람들 중에서 체육관에 혼자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본사람 손들어봐."
그러자 서너명이 손을 들었다.
"그것봐라, 재들은 안보이는데 너는 봤다잖아. 기운이 약하면 그런게 보일수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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