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1월 11일.
나는 아무말 없이 체육관 출근을 하지 않았고, 활법세미나가 있는 코리아나호텔로 갔다.
로날드 정박사라는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 주최를 했는데 활법이 아닌 acupress 였다.
스승님이 포함된 여러 사람들이 시범을 보인 후 로날드 정박사가 마지막으로 등장해서 뭔가를 보여주는 스토리였고, 로날드 정박사는 미국에 모 대학의 총장이었으며 자신이 하는 acupress를 한국에 보급시키고자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었다.
객석에는 대략 3~40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두들 40대 이상으로 보였고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여러사람들이 보여준 각각의 기술들은 매우 훌륭한 것들 이었고,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되었다.
누구라고 기억은 없는데 한사람을 침대에 눕게 하고는 두 무릎을 세워서 좌우로 내려보았고, 누운사람의 무릎은 오른쪽으로는 잘 내려가지 않았으나 왼쪽으로는 잘내려가는 상태였다.
시범자는 누운사람에게 두 무릎을 왼쪽으로 힘있게 밀어보라고 하고는 무릎을 밀지 못하도록 받쳐주고 있었다.
약 3초 정도를 받쳐 주다가는 힘을 빼는 동작을 3회를 반복하고 나서 처음처럼 두 무릎을 좌우로 내려보았더니 안내려가던 오른쪽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내려가는 것이었다.
객석이 소란스러워졌다.
교정을 한다고 하고는 채 1분도 안되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어떤이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서 상황을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시범자는 그사람을 나와 보라고 하더니 똑같이 교정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눈앞에서 바로 교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또 다른 사람은 객석을 보더니 자신이 힘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나 한사람만 나오라고 했다.
체격이 건장한 남성이 앞으로 나갔고, 시범자는 그사람에게 약 10Kg 정도의 물건을 들어보라고 했다.
건장한 남성은 쉽게 물건을 들어 올렸고, 시범자는그사람의 상완(上腕)을 몇번 문지르는듯 했는데 건장한 사람이 힘을 못쓰고 물건을 들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객석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나는 일종의 차력(借力)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별로 호응이 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범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로날드 정박사의 차례에서 정박사가 앞으로 나와서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놀랍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수기법이 이렇게 발전 했는지 몰랐습니다. 저의 acupress를 대한민국에 보급하고자 했던 저의 생각이 우물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다는걸 오늘 깨달았습니다. 저는 보여 드릴게 없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말을 끝내고 객석을 한번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학생도 수기법을 아는가?"
"네, 아까 세번째로 나오신 명재옥님이 저의 스승님이십니다."
"어떤 수기법을 배웠는가?"
"활법을 배웠습니다."
"오~, 대단하네. 그 나이에 벌써 활법을 알다니.."
로날드 정박사는 단상에서 내려와 내 옆으로 오셨다.
"혹시 수기법에 대해서 좀 더 정진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내가 있는 미국으로 오게. 공항까지만 오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해주지."
"어떤걸 말입니까?"
"우리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기숙사 제공, 용돈은 못주니까 아르바이트 일자리 정도는 주선해줄 수 있네."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값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내가 몇일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을테니까 미국으로 오고 싶다면 연락을 주게."
구름을 탄 느낌이었다.
미국까지만 가면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니, 고생이야 되겠지만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게 말로만 듣던 인생의 기회라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옆에 계시던 큰형이 한마디 한다.
"좋은 기회긴 한데... 지금 한번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을거야. 너무 멀어서 중간에 다른나라에 경유했다가 가야 할텐데, 비행기값도 엄청날걸?"
"지금 우리 형편에 만들수 없는 돈이야."
어머니의 말씀에 큰형이 다시 한마디 한다.
"어디서 빚이라도 구할수 있으면 보내는게 좋아요. 구할데 없을까요?"
"빚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나라 어디 지방에 가는것도 아니고 그 먼 미국까지 가서 고생할 필요가 있겠니? 가지마라. 넌 아직 젊으니까 살다보면 그런 기회는 얼마든지 올 수 있어. 뭘 하더라도 서울에서 해야지. 집 가까운데서."
결국 아쉽지만 미국행은 포기해야 했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첫번째 기회인것 같았다.
"세미나 참석 잘했지? 그런데 많이 다녀야 시야가 넓어지는거야."
스승님께서 말씀하신다.
"네, 골반 틀어진걸 교정하는데 그렇게 빨리 되는 방법이 있는지 몰랐어요."
"청개구리법칙이라고 해. 팔이 안올라가는 사람도 팔을 아래로 당기라고 하고 밑에서 받쳐주면서 팔을 못내리도록 제지시켜주면 안올라가던 팔도 금방 올라가지."
"청개구리법칙이요?"
"그래, 원래 안되는 쪽으로 뭔가 해야 잘될수 있는것 처럼 생각되잖아? 그런데 이 방법은 잘되는 쪽으로 교정을 해서 안되는 부분을 잘되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니까 청개구리법칙이라고 하는거야."
"네.."
스승님께서는 내가 배우던 시절에 안가르쳐주셨던 안올라가는 팔을 쉽게 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세미나를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기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세미나를 참석한게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앙체육관에서의 잔소리는 감수해야 했다.
오랫만에 활법 선배님을 만났다.
"활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나?"
"예,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잘 안되는것 같아요. 스승님도 잘 안가르쳐 주시고..."
"스승님에게 못배운게 뭔데?"
"중풍에 대한것도 안알려주시고, 지난번 세미나 참석해서 골반교정을 쉽게 하는 방법을 알았거든요, 그랬더니 스승님도 팔이 안올라가는 사람을 잘 올리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시더라구요. 만약에 세미나에 참석 안했으면 그것도 스승님이 안가르쳐 주셨을것 같아요."
"조체법 배웠구나?"
"조체법이요? 스승님은 청개구리법칙이라고 하시던데요?"
"응, 원래 이름이 조체법이야. 조체법의 원리라고 해야 하나, 정의라고 해야 하나... 아뭏든 조체법이 뭔지는 알아?"
"자세히는 모릅니다."
"우리몸의 근육들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어떤 움직임을 할 수 있어. 어떤 움직임을 할 때, 그 움직임을 하기 위해서 움직여지는 근육들이 있을거잖아?"
"네."
"그런 근육을 주동근이라고 하고 반대 역할을 하는 근육들을 길항근이라고 하는데, 예를들어서 팔을 안쪽으로 당긴다고 생각해봐. 팔의 윗쪽에 있는 상완이두근은 수축이 되겠지? 팔의 뒷쪽에 있는 삼두근은 이완이 되겠지. 이때 수축되는 이두근을 주동근이라고 하고, 이완되는 삼두근을 길항근이라고 하는거야. 팔을 당기는데 불편함이 생겨서 팔을 당기기가 어렵다면 이 두가지 근육 중에서 어느 근육의 문제겠어?"
"상완이두근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래, 그럼 상완이두근을 풀거나 운동을 해서 바로 잡아야 하겠지?"
"네."
"그런데 반대로 길항근인 상완삼두근을 운동시킴으로 팔을 당기기가 쉬워지도록 만들어주는게 조체법이라는 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선배님은 근육에 대해서도 다 아세요? 어디에 어떤 근육이 있는지?"
"골격근이 400여 개 라는데 어떻게 다 알겠어? 척추에 대한 근육이나 아는거지."
"그럼 저한테 좀 가르쳐주세요."
"근육을 알기 전에 골격부터 알아야돼. 어차피 근육이란게 골격에 붙어 있는거 아니겠어?"
"척추 말인가요?"
"척추도 알아야 하고, 골반도 알아야 하고, 머리뼈나 팔과 다리의 뼈도 알아두면 좋겠지."
"혹시 선배님한테 그런 책이 있나요?"
"책은 나도 없어. 여기저기에서 빌려 보는거지."
"저한테도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빌린 책을 다시 남에게 빌려준다는건 부담가는 일이야. 내 책이라면 빌려주겠지만.."
"그런데 스승님은 왜 모든 기술을 다 가르쳐 주시지 않을까요?"
"다 배우려면 스승님께 뭔가를 해야지, 그냥 공짜로 모든걸 뺏어가기만 하려구?"
"돈을 드려야 하나요?"
"돈? 아마 드려도 받지 않으실걸? 돈보다는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려봐. 자주 문안인사도 드리고.."
"그럼 가르쳐 주실까요?"
"스승님이 아는 기술을 모두는 아니겠지만 어느정도는 가르쳐 주실거야."
"모두는 아니라구요?"
"우리나라 사람은 스승이 가진 모든걸 배우면 그다음엔 스승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더이상 스승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되지. 그래서 모든걸 다 가르쳐주지는 않아."
"에이~, 설마요?"
"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정도 배웠다고 생각하면 스승을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다 가르쳐주면 더 심하겠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우리나라사람들, 특히 무술을 오래하거나 활법을 오래한 사람들 중에는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스승을 이길수는 없잖아? 스승은 죽을때까지 스승이잖아? 그래서 스승을 떠나서 자신이 새로운 문파를 하나 만드는거지. 그러면 그 문파에서는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잖아? 그리고는 스승과는 영영 이별을 하는거지. 가끔 스승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자신은 무슨 산에 가서 혼자 수련을 했다는둥, 활법도 독학으로 수련했다는둥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나는 장충동의 두 원장을 생각하면서 그런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법을 독학으로 수련했다고 해봐. 그건 자랑이 아니야."
"왜요?"
"한번의 성공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겠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많이 망가뜨렸다는 이야기밖에 안돼.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았다면 교정을 할 때의 힘의 비중, 각도 등을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거야. 그리고 그런 사람을 혹시 만나게 되거든 이론적으로 질문을 해봐. 거의 답변을 회피할거야. 모르니까 답변을 할 수는 없고, 아는척은 해야겠고.. 이론을 모르면서 실기를 잘한다는건 있을수 없어."
"그렇군요."
"결국 파만 많아지는거야. 이렇게 파가 많아지다보면 누가 선배이고 어디가 전통(傳統)인지를 모르게되지. 역사가 꼬이기 시작하는거야. 누구든지 자기가 하는것이 전통이라고 하니까 새로 배우는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바른 역사를 모르게 되는거지."
"우리는 전통이겠죠?"
"일단 활법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전통인 경우가 높지. 활법이란 단어를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새로운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어서 자신이 회장이 되면 제일 높은 사람이 되는거잖아?"
"그러네요."
"자네는 절대로 그러지 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