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지도하는데 중풍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옳은것일까..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나에게 온다.
"사범님, 태극6장에서 이 동작이 맞죠?"
아이는 동작을 취해가면서 나에게 말한다.
"그래, 맞아. 근데 왜?"
"쟤가 자꾸 틀리다고 하잖아요."
"아냐, 네가 맞는거야."
아이는 자기의 동작이 맞았다는 말에 상대방에게 군밤을 때린다.
그 동작이 너무 커서 내가 봐도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지. 중풍은 머리에서 오는거잖아? 그럼 머리도 풀어야 하는것 아닐까?`
잠실할머니가 나를 반겨준다.
"어제 하고나서 어떻셨어요?"
"글쎄, 아무렇지도 않았어. 좋아진것도 없고, 나빠진것도 없고.."
"어제 풀었던 근육들이 좀 더 아프진 않았어요?"
"아픈건 없었는데?"
할머니에게 엎드리라고 말하고는 머리부터 풀어준다.
어깨, 팔, 등, 허리, 골반, 다리의 순서로 풀고 나서 똑바로 누우라고 하고는 팔, 복부, 고관절, 다리의 순서로 풀고서는 목을 풀었다.
머리를 풀때는 시원하다고 하시며 좋아하셨고, 복부를 풀때는 아프다고 하셨다.
발가락을 한개씩 잡고는 다리가 땅에서 들려지도록 당겨준다.
우선은 몸을 풀어주는것과 몸에 힘이 생기도록 만들어주는것이 좋을듯 한데 몸에 힘이 생기도록 만든다는것이 쉬운게 아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보면서 한달이 지나갔다.
"뭔가 좀 달라진거 같아요?"
"글쎄 모르겠어. 그냥 똑같은것 같아. 좋아진것도 없고, 나빠진것도 모르겠고.."
스승님을 찾아갔다.
"한달을 해봤는데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어떤 방법으로 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풀어주고, 단전에 기를 넣어주는 동작도 했고, 교정은 목만 했습니다."
"그래, 지금의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중풍을 좋아지게 만들수 없어. 뭔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봐. 이제까지 배운 활법의 범위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다시 한달만 더 해봐. 여러가지 생각해서... 그리고나서 나한테 오도록."
답이 없다.
아무것도, 아무런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활법밖에 배운게 없는데, 활법의 범위를 벗어나라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나는 다시 한달동안 잠실을 갔고,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스승님의 대답은 같았다.
"배운 내용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니까? 뭔가 창의적인걸 생각해보라구."
다시 잠실에 갔을때 할머니께서 거절하셨다.
"그동안 고마운데, 내가 좋아지는게 없으니까 하기가 좀 그래, 공짜로 하니까 부담도 되고.. 이제 그만 왔으면 해."
"효과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의 공부를 위해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냐, 그만할래. 나도 힘들어."
결국 아무런 진전도 없이 두달을 보냈다.
잠실할머니가 좋아진 부분도 없고, 중풍에 대해서 뭔가를 배우거나 느낀것도 없었다.
스승님께서는 또 다른 중풍환자를 찾아서 공부를 할것을 말씀하셨지만 내 스스로가 내키지 않았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중풍환자를 만나는 자체가 잘못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오전에는 한신아파트 이곳 저곳을 출장을 다님으로 수입이 늘어났고, 이곳 관장님과는 별개의 일이지만 성의표시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주머니에 돈봉투를 넣고서는 관장님을 찾아갔다.
돈봉투에는 10만원을 넣었는데, 당시 내 한달 사범 월급이 13만원이었으므로 적은돈이 아니었다.
나를 본 관장님은 화부터 내셨다.
"요즘 활법인가 뭔가 한다고 애들 가르치는것에 너무 소홀한거 아냐?"
"애들 수련시간에는 활법 안하는데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별로 안좋아. 내생각에는 활법을 하지 말고 그냥 아이들 태권도만 잘 가르쳤으면 좋겠어."
"......."
"그리고, 젊은 사람이 너무 돈을 밝히는건 내가 보기에도 안좋아."
내가 돈을 밝힌다?
아이들 태권도 시간을 펑크낸적도 없고, 돈을 밝힌적도 없는데, 왜 이런 말을 하는걸까?
나는 속주머니에 넣어둔 봉투를 꺼내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관장님에게 주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냥 대답만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와서 형들에게 그 말을 하니 형이 말한다.
"그 관장은 말을 잘못해서 그냥 공짜로 생기는 돈을 날렸구나. 관장이 배가 아팠나보다. 그래도 그냥 주지 그랬어?"
"즐거운 마음으로 간건데 기분이 상해서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결국 이 일로 관장은 새로운 사범을 구했고, 나는 체육관을 그만두게 되었다.
1984년 11월 11일에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활법에 대한 세미나가 있다는걸 스승님께서 알려주셨다.
"시간되면 와봐. 도움이 많이 될거야."
세미나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 했기 때문에 참석을 하려면 관장님이 허락을 해줘야 했다.
나는 그때 월계동의 중앙체육관을 다니고 있었다.
활법에 대해서 도움이 된다고 하니 너무나 참석하고 싶었다.
"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뭔데?"
"11월 11일 하루만 빠지게 해주면 안될까요?"
"무슨일 있어?"
"그날 활법 세미나가 있는데, 저의 스승님께서 초대를 해주셨거든요."
"그날이 언제지?"
달력을 보고서는 다시 말한다.
"평일이네? 안돼.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세미나가 일찍 하니까 끝나면 바로 올게요."
"어쨋던 수련시간 안에 못온다는 거잖아? 안돼."
"한타임만 관장님이 해주시면 안되요? 그냥 하루만 개인수련시키면 안될까요?"
"무슨 소리야? 무조건 안돼. 사범이면 사범의 일을 해야지 무슨 세미나야?"
세미나 참석은 안된다면서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런데 활법을 알아? 벌써?"
"네, 배웠습니다."
"그래? 내가 요즘 몸이 안좋은데 수련 끝나고 나좀 해줘봐."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수련이 모두 끝난뒤 관장님이 원하는대로 매일 댁으로 가서 활법교정을 해주었다.
관장님은 몸이 좋아지는게 느껴진다면서 매우 흡족해 하셨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11월 10일이 되었다.
"관장님, 내일 세미나 참석 좀 하면 안될까요?"
"뭐라구? 내가 안된다고 했잖아."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실망으로 사라졌다.
이제껏 매일 활법교정을 해주었던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내일은 정말 참석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