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체육관은 아파트 한 개 동의 지하를 모두 사용했었고, 사이에 어떤 칸막이나 벽이 없었다.
넓은 바닥은 전체적으로 카페트를 깔아 놓았고, 한쪽 끝으로 매트를 깔아 놓았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낙법이나 체조 동작들을 지도했었다.
활법을 하려고 세미나를 하긴 했지만 이 넓은 공간에서 활법을 하려면 일부를 칸막이로 막거나 커텐으로 가려야 할 것인데, 나에게는 그럴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세미나를 통해서 오는 손님들을 모두 출장으로 해결해야 했다.
태권도 수련은 오후3시부터 있었기에 오전에서부터 오후2시까지는 출장을 할 수 있었고, 혹은 오후 7시가 지나서 출장을 해도 될 일이었다.
이때부터 활법 고객들을 접수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좋은 효과를 보고 돌아갔다.
단지 내에서는 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나를 보면 먼저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력이 나빴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먼저 알아보지 못해서 가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활법에 대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던 어느날 주간잡지인 <선데이 서울>의 독자란에 기재된 하나의 편지를 보게 되었다.
<저는 19세의 소녀랍니다. 국민학교 5학년때 산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척추만곡증이 되어버렸어요. 그후로는 키도 안크구요. 병원에서는 수술비로 1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저는 돈도 없고, 하루하루를 울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실분은 안계신가요?>
척추만곡증은 척추가 좌우로 S자로 휘는 질환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추만곡증이면 척추를 바르게 펴주면 되는게 아니냔 말이다.
<저도 가난해서 여기 와서 계실수는 없고, 만약 서울에서 거처할 곳이 있다면 서울로 오세요. 척추만곡증은 못고치는 질환이 아닙니다. 제가 무료로 고쳐드리겠습니다.>
나는 편지를 써서 강원도에 산다는 그 소녀의 집으로 보냈다.
10여일이 지난 어느날 물어물어 찾아왔다면서 한 여성이 나를 찾았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지?`
키는 150cm도 안되어 보였고, 위에서 내려본 어깨의 굵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는데, 왼쪽 어깨의 두배 가량 되어 보였다.
척추는 S자로 휘어 있었는데, 오른쪽 어깨가 굵은만큼 흉추는 오른쪽으로, 요추는 왼쪽으로 측만변형이 되었으며, 골반의 오른쪽이 상향되면서 뒤로, 시계방향으로 회전된 모습이었다.
엎드린 자세로 척추를 진단 했는데 경추에서 흉추로 이어지는 부분이 진단이 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 거지?`
나는 고민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서울에 지낼곳은 있어요?"
"영등포에 친척이 살아요."
"그럼 영등포 친척네 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친척집에 가 있어요. 내가 연락을 드릴께요."
여러날을 고민과 걱정으로 지새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났다.
`나는 어렵지만 스승님이라면 충분히 방법을 아실거야. 스승님께 여쭤봐야겠다.`
나는 곧바로 스승님께 연락을 했고, 스승님께서는 같이 와보라고 하셨다.
정숙(강원도 소녀)에게 전화를 해서 노량진역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보자 생글생글 웃으면서 반가워 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스승님을 만나러 협회에 들어갔다.
스승님께서는 정숙을 보자마자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더니 나에게 잠깐 밖으로 따라 나오라고 하셨다.
"야, 임마, 활법을 얼마나 했어? 니가 뭘 얼마나 안다고 어린 여자에게 상처를 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스승님에게 <야>라는 단어와 <임마>라는 말을 들었다.
스승님은 화가 나 계셨고, 어린 제자의 철없는 행동을 어찌할줄 몰라 하셨다.
"저 상태는 활법으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지나갔어. 고칠수 없는 상황이야."
나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중풍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걷게 만들어 주셨던 분이 아니던가..
그런데 활법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저 아가씨가 니 말을 듣고 얼마나 희망찬 마음으로 올라 왔겠어? 그런데 못 고친다고 하면 마음이 어떨것 같아? 처음 가졌던 아주 큰 희망보다 더 큰 절망을 갖게 될거야. 너, 어떡할거야?"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속이 멍 하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잘 이야기 해서 고향으로 보내."
나는 지금도 정숙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실수를 했던, 아니 순진한 시골 소녀에게 마음만 아프게 만들었던 잘못된 일을 잊을수가 없다.
그리고 40년 활법 인생에서 정숙만큼 심한 척추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 활법으로 안되는 척추질환도 있구나.. 활법으로 모든게 되는건 아니었구나..`
** 척추만곡증은 척추가 S자로 휘는 질환으로 1984년 당시에는 척추측만증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현재는 좌우로 휜것을 측만증, 전후로 휜것을 만곡증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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