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 이야기

낙산아파트의 유령들..

전통활법 2022. 1. 12. 14:03

1.

1970년대 초 창신동 산6번지의 낙산에는 시민아파트라고도 하고 낙산아파트라고도 하는 4층짜리 아파트 28개동이 있었다.

각 동은 가운데 복도가 있었고, 복도 양쪽으로 5~6개의 집들이 있었으며 복도의 한 가운데 양쪽으로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한가구당 한 개의 화장실을 사용했었다.

나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낙산이 돌산이라서 돌을 깨뜨리기 위해 남포를 사용하였는데, 이때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잦은 사고로 인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3동이 위치한 자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던 우리 가족은 3동에 세를 들어 살게 되었다.

사실을 알았더라도 돈이 없던 시절에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통행금지라는게 있어서 밤 12시가 되면 길거리를 다닐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밤 10시 정도가 되면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날인가 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으면 복도에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도 들린다는 것이었다.

나도 몇번인가 그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12시 전에 항상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동네 주민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가 나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무도 없더라는 이야기와 문을 닫고 잠시 지나면 다시 소리가 들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복도를 서성거리는 사람도 있을수 없었고, 설령 누군가 멀리서 찾아 왔다고 하더라도 아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거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계절에 관계없이 거의 매일 그런 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2.

매월 25일은 반상회 날이다.

오늘도 통장집에 모여 각 호의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다.

공동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복도의 불은 어두워지기 전에는 켜지 말고, 동이 트면 바로 끄자는 말들, 화장실을 좀 깨끗이 하지면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자는 말들 등 여러가지 주제들을 말하고 난 후 한 아주머니가 보호자를 따라온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묻는다.

"이번엔 어떻게 되겠니?"

"10호."

10호라는 말이 떨어지자 한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다른 한쪽에서는 걱정의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턴가 이 아파트의 반상회 날에는 엄마를 따라오는 국민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회의가 끝나면 항상 한개의 호수(號數)를 말을 했고, 다음 반상회가 열리기 전까지 1층부터 4층 까지 해당 호수의 사람들 중에서 반드시 한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러니까 이 아파트에서는 매월 한사람씩 죽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불안하면서도 자기가 사는 호수가 불려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에게 물어보곤 했다.

 

10호라는 말이 떨어지고 일주일이 되기 전에 4층 10호에 살던 주민이 이사를 했고, 다른사람이 이사를 왔다.

사실 약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복덕방에 집을 내놓고 이사를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4층10호에는 상가집이라는걸 알리는 근조등이 걸려 있었다.

 

 

3.

친구의 어머니는 진실한 크리스찬이다.

그러나 그의 시어머니는 진실한 불교신자 였다고 한다.

할머니가 반대한 결혼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결혼후 딸과 아들을 낳고 10년쯤 흐른 뒤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는 이것이 종교적 신들의 다툼이라고 말하고는 지금이라도 교회를 나가지 말것을 권유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안나갈 어머니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의 왕래도 사라지게 되던 어느날 누나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날 친구가 자기집에 아무도 없다면서 같이 놀다가 잠도 자고 가라면서 나를 불렀다.

우리는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저녁8시쯤 친구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뭔가로 유리를 긁는듯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빠각, 빠가각>

처음엔 누군가 한사람이 유리를 긁는듯한 소리로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리는 점점 여러사람이 긁는듯한 소리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빠가각 소리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쪽에서 났다.

창문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한쪽의 길이가 120cm, 폭이 90cm 정도인 미닫이 상태의 유리문이었고, 유리문 안쪽으로는 커텐으로 장식을 하고, 유리문 밖으로는 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도록 철조망(요즘의 방범창 같은)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친구도 누워는 있었지만 잠에서 깨어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밖에 누가 있나봐."

우리는 커텐으로 가려져 있어서 밖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밖에서 유리를 긁고 있다는 생각은 같았다.

"커텐을 치워볼까?"

"아냐, 그러다가 정말 누군가 있으면 어떡해?"

"밖엔 철조망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올수가 없잖아?"

우리는 밖에 있는 누군가가 들을까 무서워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귓속말로 이야기 했다.

유리를 긁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것 같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커텐을 치워보기로 했다.

숨을 죽이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양쪽에서 커텐을 잡고는 동시에 양쪽으로 당기는 순간 우리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유리창 뒤에는 어디서 모였는지 모르는 고양이들이 철조망을 발판삼아 유리창을 발로 긁고 있었다.

마치 집으로 들어 오려는 것처럼.

얼핏 보기에도 스무마리는 될 것 같았는데 이 많은 고양이들이 어디서 나타났으며 왜 하필 친구의 집에서만 창문을 긁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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