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데이케어 이야기

전통활법 2021. 2. 1. 11:39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데이케어센타의 차량에 탑승하시는 어르신들에게 하는 인삿말이다.

요즘은 날씨가 추우므로 댁에 도착하기 2~3분 전에 전화로 나오시라는 연락을 드린다.

어르신들은 각자의 보호자와 함께 밖으로 나와서 보호자와 잘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면서 차에 오른다.

어르신들은 대개 말씀이 없으시다.

센터에 도착할때까지 그저 묵묵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다.

함께 동승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묻는다.

"어르신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몰라.. 허허."

"어디 가는지 모르면서 차를 타신거예요?"

"마누라가 타고 가라니까 탔지."

"그럼 저는 누군지 아세요?"

"몰라.. 허허.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거 자꾸 묻지마. 허허허."

또 다른 어르신께 묻는다.

"어르신, 오늘 날씨가 좀 흐렸어요."

"그러게, 날씨가 아주 찌푸린 시어머니상이야."

"찌푸린 시어머니 얼굴이 이런 날씨 같아요?"

"그래~, 날씨가 반짝반짝 하지 않으니 찌푸린 시어머니상이지."

 

어떤 어르신은 치매로, 어떤 어르신은 몸이 불편해서, 어떤 어르신은 낮에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데이케어센타를 이용하신다.

그냥 걸으시는 분도 있지만 지팡이로 걷는분, 워커를 이용하시는분, 휠체어를 이용하시는분들도 있다.

물리치료를 하고, TV를 시청하기도 하고, 누워서 쉬거나 요양보호사, 혹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게임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기도 하며, 식사와 간식을 드시기도 하며, 요일에 따라 목욕도 한다.

어르신들은 이곳을 <학교>라고 부른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흡사한면도 있다.

보호자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점, 여러가지 놀이와 수업, 게임, 운동을 한다는점 등이 비슷하다.

 

간혹 여기에 계시다가 상태가 나빠져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반대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센타로 오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상태가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불효한 사람 때문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갔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이곳으로 오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한 어르신은 요양병원에 있다가 해외에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는 바람에 요양병원에서 나와서 센타로 왔다.

센타에 입소하셔서는 말씀도 안하시고 눈치만 보는 모습이 여러 쌤들을 안타깝게 했다.

첫 목욕 서비스를 받던날 쌤들은 그 어르신의 몸 곳곳에서 시퍼런 멍자국이 있는걸 확인했다.

쌤들의 노력으로 어르신은 차츰 웃음을 찾기 시작했고, 말씀도 하기 시작했다.

또다른 어르신은 요양원에 있다가 센타로 오셨는데, 색칠하기를 하던 중에 쌤이 크레파스를 여러가지 색으로 사용하시라고 말하자 "잘못했어요, 다시 안그럴게요." 라고 말하는 어르신을 보며 쌤들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모두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좋은것 많은 아닌듯하다.

오죽하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우리 어머니도 상태가 조금씩 심해져서 요양병원을 알아본적이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는 입소할때 수면제를 처방 받아 가져오라는 말을 했었다.

우리 어머니는 잠은 잘 주무신다고 했음에도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오신분들 중에는 적응하기가 좀 어려운 분들이 있어요. 그때 가만히 계시는게 아니라 심하게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럼 저희들이 일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아주 심할때만 수면제로 주무시도록 할때도 필요하거든요."

그때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다 싶다.

더우기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면회도 어려운데, 안에서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한 남자 어르신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려다가, 걸음은 느리고 소변은 급한 나머지 그만 그자리에서 하의를 훌러덩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센타 안에는 여러 어르신들이 계셨고, 그 모습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보았다.

한 여자 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저게 뭔짓이야?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값을 해야지, 어디서 바지를 내리고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몇몇 어르신들이 그 말에 동조를 하는듯 한마디씩 한다.

"인성이 그릇되서 그래, 젊었을때는 더했을거야."

"늙으면 곱게 늙어야지, 저게 뭐야?"

센타 바닥에 실수를 한 어르신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못한체 서 있었다.

쌤들이 일어나서 어르신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바닥 청소를 한다.

"어르신 괜찮아요,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실수를 한 어르신은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때 한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친다.

"야, 니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어? 사람이 몸이 불편하면 실수할수도 있는거지, 사람이 실수를 하면 서로 감싸줄줄을 알아야지, 니들은 실수 안해? 건강해? 건강하면 뭐하러 이런데 나와?"

센타가 조용해진다.

몇초의 시간이 냉정하게 흐르고는 쌤들이 수습을 하기 시작한다.

센타는 차츰 평온을 되찾아 간다.

 

다른 어르신이 간식으로 나온 떡을 드시다가 목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떡은 한 보호자분이 센타에서 간식으로 나누어 드시라고 보내온 것이었다.

쌤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119에 전화를 하고, 어르신을 뒤에서 부둥켜 앉고 횡경막을 당겨 떡을 뱉어내게 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변해간다.

목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고 노력을 해보고, 다시 뒤에서 끌어 앉고 당기니 떡은 나왔는데, 어르신은 거의 기절 직전이어서 119차로 병원으로 모셨다.

시간이 흐르고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에 쌤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수 있었다.

 

이곳은 다른곳에 비하여 매우 좋은 편이다.

센타를 운영하는 원장부부가 젊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일에 대한 노력이 넘치고 뭐든지 어르신들을 위한 생각으로 운영을 하는듯 보였다.

이런 노력이 세월에 관계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쭉 오래 간다면 정말 아주 좋은곳으로 정평이 날것이다.

 

전에 잠깐 다른 센타를 경험한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내가 센타 안으로 들어가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곳처럼 어르신들과 게임을 하고, 운동을 시키는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어르신들에게 가끔 여쭈어본다.

"어르신~."

"응."

"어르신은 학교에 오시는게 재밌어요?"

"그럼~, 아주 좋지. 재밌어, 집에 있으면 뭐하누? 이렇게 친구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그게 좋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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