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길을 걷다가 개와 함께 산책하는 여성을 보았다.
여성의 체격은 일반적이었으나 개는 상당히 컸다.
시베리안허스키 같이 보이는 개는 사람이 엎드린 모습 보다는 훨씬 커 보였는데, 여성이 개의 목줄을 잡고 산책을 한다기 보다는 개에게 거의 끌려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저 개가 힘을 쓴다면 여성은 당연히 목줄을 놓을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왜 저렇게 큰 개를 데리고 다닐까..
만약에 저렇게 큰 개가 나에게 달려든다면?
주변엔 약간의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사고가 날 경우 그들이 할 수 있는건 한계가 있을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개는 입마개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개가 누군가를 공격한다면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본인에게는 아주 좋은 애완견이나 반려견일지 모르겠지만 개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본인이 감당할수 있는 정도로 산책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예전에 골목길에서 개를 만났던 일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큰 개를 만났다.
골목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저쪽에서 큰 개가 주인 없이 오고 있고, 나는 그 길을 지나가야 했다.
가야되나, 되돌아서 가야 하나를 잠깐 생각했다.
솔직이 겁은 났지만 뭔일 있겠냐 싶기도 하고 개도 우락부락하게 생긴건 아니어서 그냥 지나가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맞은편 쪽에서 오던 개가 나의 옆으로 지나가는듯 싶더니 되돌아서 나를 쫒아오는 것이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개 앞에서 뛰어서 도망가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그냥 걸었다.
설령 뛴다고 해서 내가 개보다 빠를수도 없을것이고....
긴 골목길은 저만큼 앞에도, 한참 뒤에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개는 그저 묵묵히, 마치 나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인것처럼 나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따라 오고 있었다.
개는 아무런 말없이 나를 쫒아 왔지만 나는 눈도 마주칠 생각이 없었다.
평소 얼마 되지 않았던 골목길은 그날따라 무척 멀었다.
누군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아이들 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살던 집은 아직 걸어서 10분은 더 가야 했다.
어떻게 그 먼길을 이렇게 큰 개와 동행을 한단 말인가..
이 개는 도대체 왜 나를 따라오는 것일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는데..
뒤를 돌아서면서 발로 개 머리를 한대 차면 깨갱~ 하면서 다른데로 가지 않을까..
그러기엔 개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만에 하나 개가 안맞거나 비껴 맞고서 오히려 나를 공격한다면?
아니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나를 해코지 한건 아니잖아..
나를 해코지 하려고 했다면 이렇게 조용히 따라오지는 않겠지..
그래도 모르는거니까 계속 긴장은 하고 있자..
맞다, 저 모퉁이를 돌면 누나가 사는 집이 있지..
누나는 골목 안쪽에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누나네 대문이 잠겨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가 있기를 바랬지만 인기척도 없었다.
이제 누나네 집에 거의 다왔다.
저 계단만 올라가면..
제발 대문이 닫혀는 있고, 잠겨 있지는 말아라..
모퉁이를 돌았는데도 개는 여전히 나를 쫒아 온다.
계단을 오르면서 아직은 불안한 긴장감에 약간의 안도감이 생긴다.
대문 앞에 서서 살짝 뒤를 돌아 보았다.
큰 개는 그저 묵묵히 내 뒤에 서있었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돌렸다.
대문을 살짝 밀어본다.
문이 잠겨있다.
혹시 아무도 안계신건 아닌가..?
그럼 진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순간 불안감이 밀려온다.
"누나~~!!"
안쪽을 향해 누나를 불러본다.
개가 놀랄까봐 큰소리는 아니지만 안쪽에서 들릴정도의 강도로 불렀다.
"누구세요?"
다행히 누나가 계신다.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빠진다.
"막내에요~"
문을 열어 주시는 누나에게 인사를 하면서 아주 조금만 문을 열었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큼만.
몸을 옆으로 하여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아버렸다.
혹시라도 큰 개가 따라 들어 올까봐 얼른 닫아 버리고는 빗장을 걸었다.
"왜그래? 무슨일 있어?"
영문을 모르시는 누나가 물으신다.
"밖에 아주 큰 개가 나를 따라왔어요. 오늘따라 골목에 아무도 없어서.. 여기도 따라 들어올까봐..."
"무서워서 얼른 닫았구나?"
"뭐, 무섭다기 보다는..."
"그런데 개가 왜 따라왔을까?"
"글쎄요, 처음 보는 개였는데.."
"혹시 배가 고파서 따라온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데리고 들어 오지 그랬어?"
"어휴,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실려구요?"
"사고가 나려면 벌써 났겠지, 골목길을 니 걸음에 맞춰 따라 오겠어?"
그러고보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개가 생각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
아무일 없이 친근하게 집까지 따라 왔더니 문전박대를 한다?
"나가봐, 아직 안가고 있으면 밥이라도 국물에 말아서 좀 주게."
문을 삐끔히 열고 밖을 살펴본다.
혹시나 정말 개가 앞에 있다면 어떡해야 하나 했는데, 대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배가 고팠던 것이라면 내가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다시 본다는건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