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속이 더부룩하여 청계천으로 광화문까지 걷고 오려고 집을 나섰다.
동묘앞역을 지나 청계천으로 가면 청계천 산책로로 내려가기 위해 다산교(茶山橋)를 건너야 한다.
다산교는 정약용의 호를 따서 붙인 다산로로 이어지는 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계단을 내려가 바윗돌 징검다리를 건너 광화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청개천(淸開川)이라고 한다.
개천이란 `내를 파낸다`라는 뜻으로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일제강점기때 청계천(淸溪川)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총 길이 5.84km, 산책로12.04km, 하루 물 소비량 120.000톤이란다.
청계천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서울 도심으로 모인 물길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1971년에 광교부터 마장동까지 총길이 5.6km, 폭 16m의 청계고가도로가 완공되었고, 1960~1970년대에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나 공구, 의류 등 여러가지 산업이 집중되면서 시설낙후, 공해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나 도시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3개월에 걸쳐 태평로에서 신답철교까지 복원 사업이 시행되었고 현재의 청계천이 되었다고 한다.
(자료 : 다음백과)
지금시간 오후 10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청계천길을 걷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없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선 열심히 걷고 있다.
가끔씩 반바지나 츄리닝 차림으로 뛰어 다니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낮이라면 물속의 물고기들도 보였을텐데 밤이라서 그런지 물고기들이 잠을 자는건지 보이지 않았다.
청계천6가 교차로의 오간수교 밑을 지난다.
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성벽에 다섯 개의 아치형 구멍인 오간수문에서 유래되었다.
죄인이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었다고 한다.
명종때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왔다가 도망갈 때에도 오간수문을 통했다고 한다.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는 젊은 사람들도 보이고(여기서 자전거를 타는게 허용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가는 여성도 보인다.
청계천6가와 5가 교차로 사이에 있는 버들다리, 일명 전태일다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해방 이후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자리라고 한다.
이어서 청계5가 교차로에 위치한 마전교는 태종때 창선방교(彰善坊橋)로 불리다가 성종때는 태평교(太平橋)라고 불렀다.
영조 이후에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마전교라고 불렀고 속칭 소다리라고도 하였다고 전한다.
청계4가 교차로의 배오개다리는 종로4가 교차로에 배오개(梨峴)라는 고개가 있던데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이 외에 수표교, 삼일교, 장통교, 광교, 광통교, 모전교 등이 있다.
청계천의 마지막엔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도록 인공으로 만든곳이 밤에는 불을 밝혀 아름답게 꾸몄으며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만드는 곳이다.
폭포수 옆에 서서 사진을 한장 찍고 왔던길을 되돌아 걸어간다.
오간수교에 도착하니 오후 11시 40분.
더부룩하던 속도 편해졌고, 잠도 잘 올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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