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창신동 산6번지 낙산아파트 19동에서 살았었다.
동대문에서 골목골목으로 올라가다보면 낙산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 했는데, 19동은 비교적 높은곳에 위치했었고, 앞에 위치하던 18동이 철거된 후로는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서울시 일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 되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 언제나 어머니는 창문을 열고 서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셨다.
이런 배웅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되었다.
아파트가 철거되고 창신2동으로 이사를 했을 때에도 어머니는 항상 밖으로 나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2000년도에 지금의 창신동 두산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이어서 7호부터 15호까지 한줄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집은 15호, 제일 끝집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항상 7호까지 나오셔서는 손을 흔들며 배웅하셨다.
언제부턴가 7호까지 나오시던 어머니의 발길이 12호에서 멈췄다.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웃음짓는 모습으로 배웅을 하셨고, 나는 그저 당연한 일과로 생각만 했었다.
지금 어머니는 문밖으로 나오시지 않는다.
문을 조금 열고는 가는 모습을 바라보실 뿐이다.
이제서야 나는 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항상 강했던 분이셨는데..
이제는 치매끼도 있어서 자주 잃어버리곤 하신다.
그래도 항상 해왔던 일이라서인지 지금도 밥이며 빨래며 손수 다 하신다.
당신이 안하시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슈퍼에 가면 두부, 파, 생강, 호박 등등을 사오시는데, 그것은 어제도, 그제도 사오셨던 물건들이다.
냉장고를 열어 보시고는 쌓여있는 식품들을 보시고는
"누가 이런걸 사 놓았냐? 사놨으면 나에게 말을 해야 알지..."
라고 하신다.
보청기는 언제나 자주 사라지는 물건이다.
어머니 성격이 매우 꼼꼼하신 편이어서 아무곳에나 물건을 두시지는 않지만, 보청기를 두실 만한 장소가 너무 많고, 작은 물건이기에 나는 거의 매일을 보청기를 찾아 헤멘다.
예전에는 항상 같은 곳에 두시던 물건들을 지금은 자리를 옮겨서 놔두시기에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상황에 어머니가 안됐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생활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머니는 무서움을 많이 타신다.
어슥어슥해지는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혼자 못 계신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
밖에 나가 일을 볼 때에도 어슥해지면 어머니로부터 집으로 들어 오라는 전화가 시작된다.
바쁠때에는 이런 전화가 짜증스럽기도 하다.
강아지라도 한마리 키우자고 했지만, 말 못하는 짐승들에게 혹시라도 밥을 못주던가 사랑을 못주면 죄가 된다고 하시며 반대하신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점점 더 심해질텐데..
한편으로 어머니가 안되 보이고, 그래서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자신의 스트레스가 겹쳐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8살때, 낙산아파트 6동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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