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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전통활법 2012. 5. 15. 21:47

나는 지금 하는 일을 꽤나 오래 했다.

1984년에 스승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연 이후 30년이 가깝도록 활법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왜냐하면 활법은 너무나도 좋은 수기법이기 때문이다.

활법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좋을때도, 정말 싫을때도 있다.

좋을때는 나에게 시술을 받은 사람이 아팠던 곳이 좋아져서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이고, 나쁠때는 나에게 온 고객이 좋아진 부분이 없을 때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바라는 일은 활법이 국가가 인정하는 어떤 자격증 제도에 합류되어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이고, 그에 대해서 어떤 시험을 본다면, 설령 내가 그 시험에 불합격되어 다시 활법을 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질환은 현대 의학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치유될 수 없는 것도 무수히 많다.

현대 과학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한다.

활법도 마찬가지이다.

활법으로 노력하는 부분은 인체의 모든 질환 중에서 척추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척추에 대한 모든, 전반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척추에 대해서도 극히 일부분만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척추의 질환중에서, 척추관 협착증, 척추분리증, 강직성척추염, 압박골절, 척추에 금이가거나 부러진 상태, 척추 염증 등등... 활법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활법으로 가능한 질환은 척추디스크와 척추측만증 정도이다.

척추디스크도 디스크 수핵이 터져서 수핵이 흘러 내려 어는 부분에 고여 있다면, 활법의 기술로는 안되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디스크와 척추측만증은 활법으로 무조건 가능한가?

아니다. 서로가 열심히 노력했을 때 80% 정도의 효험이 나타난다.

이건 나의 경험상의 이야기다.

그럼, 나머지 20%는 무엇인가?

그냥 현 상태로 머무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꼴이 되므로 서로가 아쉬운 상태가 된다.

내 경험상 더 나빠지는 경우는 0.1% 미만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자신없는 사람은 시작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나는 활법인생 15년의 경력후에 손 끝의 느낌 만으로 디스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며, 이 부분으로 스타킹이라는 프로에 나가려고 문을 두드린 적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느낌을 X-ray나 MRI보다 정확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실험을 한다고 해도 응할 자신이 있다.

 

나는 오늘 나의 경험상 최악의 상태를 쓰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하여 나는 최대한 거짖이 없도록 쓰려고 노력하였으며,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못의 판단 여부를 감히 묻는 바이다.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이라면, 죗값을 당연히 치를 생각이고, 다시는 활법에 대한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2009년 어느날 한 손님이 찾아왔다.(예의상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다.)

그 손님은 척추에 대한 통증과 불편함을 호소했으며, 20회가 되기 전에 좋아져서 돌아갔다고 생각된다.

그 사람은 내가 운동 사진이 부족해서 모델이 되 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도 혼쾌히 승락했고, 어머니가 동행한 상태로 같이 식사를 2회 했었다.

나중에 좋아진 느낌을 내 홈피의 치료사례란에 올려주기도 했다.

이후 그의 어머니도 수 회에 걸쳐 나에게 와서 활법 시술을 받았고, 그때마다 병원보다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면서 호의를 표하기도 했다.

 

2011년에 군대간 아들이 휴가 왔다면서, 허리가 불편하다고 한다면서 나에게 데려왔다.

나는 휴가 기간이 길지 않음을 알고, 몇일 안되는 기간이지만 매일 오라고 말했다.

나의 기억상 아들은 골반이 틀어져 있었고, 디스크도 의심이 되는 상태였다.

그 아들은 나에게 딱 2회를 오고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것이 대략 3, 4월 경이 아닌가 싶다..(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동년 10월인가 11월 경이라고 생각되는데...(이 부분도 정확한 날짜 기록은 없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내가 아들을 망가뜨려 척추분리증이 됐으니 어떻게 할거냐?  라는 이야기 였다.

이때에는 전화로 딸을 바꿔 달라고 해서, 딸과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가 지금 아들이 아프니까 속이 많이 상하셔서 그런 것 같은데, 잘 말씀드리고 주무시게 해라."

라고 말하고 아들이 휴가를 나오거든 한 번 들리라고 전했다.

그 이후로 또 전화나 방문은 없었다.

 

2012년 올해 3월 15일에 어머니를 포함한 3인(엄마, 딸, 군대간 아들)이 방문했다.

처음엔 현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화기애애(?) 하게 했으나 점점 격양되어 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아들이 군대가서 `척추분리증` 진단을 받았다.

부대에선(군 병원) 수술을 권했고, 아들은 한의학적 치료를 요구했다.

부대에서 허락하여 외출로 한의학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상태는 그대로인지라, 부대에서는 다시 수술을 권유했다.

아들은 수술을 거부했고, 부대 내의 상급자나 동급자에게 왕따 당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하여 부대의 상급자보다 더 높은 타부대의 고참(?)에게 잘 봐달라는 내용을 전달했으나 아들의 부내내에서 왕따는 점점 심해졌다.

이 모든 원인은 아들을 척추분리증으로 만든(?) 나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을 때, 부대를 직접 찾아가서 아들을 이해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느냐고 물었다.

더 높은 계급에게 부탁했는데 굳이 뭐하러 찾아가느냐고 답한다.

아들이 할 일을 다른 부대원이 분담해서 해야 할텐데, 당연히 부대원들이 싫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같은 부대원이 그런것도 이해 못해주냐고 한다.

참 말하기가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답답하다고 말해버렸다.

이 모든게 내가 아들의 허리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란다.

 

 

"처음에 내가 봤을 때, 휴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매일 오라고 했는데, 안왔잖아요?"

"어쨋던 두 번 온 걸로 망가진겁니다. 아주 후회가 됩니다."

"그럼 그때 바로 말씀하시지, 왜 6~7개월이 지난 후에 내 잘못이라고 말씀하나요?"
"그때는 애가 너무 아파하고 병원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여기 올 시간도 없고.."

"그럼 여기저기서 치료한건 잘못됨이 없고, 내가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젤 만만하다는 건가요?"

"어쨋던 선생님이 망가뜨렸으니 책임을 지세요."

"내가 망가뜨렸다는게 확실하다면 책임을 져야겠지요..하지만 두 번으로 아들이 망가졌다면, 딸은 나에게 치료사례를 써주기 전에 반신불수가 되어야 정상이지 않을까요?"

"딸은 말할 필요 없구요,, 아뭏든 어떻게 책임을 질겁니까?"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잠시 생각하다가 딸에게 물었다.

"딸은 좋은 대학도 나오고, 인테리니까 말을 좀 해봐요, 동생을 내가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나요?"

"........"

"내가 오라고 한 날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안오고, 6개월이 넘어서 전화 한 번 하고, 또 아무런 연락 없다가, 이제와서 모든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

"아뭏든 아들은 부내내에서 최대한 잘 어울리도록 노력해보고, 오늘 이후로 만약 휴가를 나오던지, 밖에 나올 수 있다면 나에게 먼저 들리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기로 동의를 하고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

 

2012년 5월 14일 초저녁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방적인 전화로 아들이 군 병원에 입원했고, 부대도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서, 이 모든게 나때문 이라면서 100억, 200억도 아들을 생각하면 적은 돈이지만 있는대로 보내라고, 계좌번호 보낼테니 바로 보내라고 말하고는 먼저 끊었다.

30년이 가깝게 활법인생을 걸어온 마음이 참으로 허전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다.

내가 정말 잘못한것입니까?

 

* 아직 계좌번호를 받진 않았고, 그후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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