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 사범생활
1989년에 나는 서울의 사당동이란 곳에서 태권도사범생활을 했어.
ㄴ체육관에 취직이 되고 첫날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마지막 타임에 고등학생들이 10명 정도 있더라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일반인도 있었고..
태권도 사범을 할 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 그냥 가르쳐 주기만 하면 되.
중학생 중에는 어쩌다 한두명쯤 사범 말을 안듣는 아이들이 있을수도 있는데,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그냥 말로 해서는 안듣거든.
내가 자기들보다 더 강하다는걸 보여줘야 해.
강하다는걸 보여주는 방법은 1대1 겨루기를 하는거야.
아이들에게 내가 맞으면 실력없는 사범이 되서 아이들이 말을 안들어.
그렇다고 너무 때려 놓으면 반항심에 체육관을 그만두게 되지.
그러니까 한대도 안맞으면서 한대나 두대 정도만 기분 나쁘지 않게 때려줘야 하는거야.
여기서는 10명 정도의 관원생들과 한번씩은 다 겨루어 줘야 하는거지.
첫날은 간단한 소개와 각자 몸을 풀면서 아이들의 실력을 점검해봤어.
모두들 중간적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딱 한사람만 눈에 띠게 잘하는거야.
스피도가 엄청난데 파워도 엄청난거야.
그 발에 한대 맞으면 꽤 아프겠더라구..
둘째날부터 한사람씩 겨루기를 했어.
가볍게 웃으면서 스파링을 했지.
하루하루 날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불안해지더군.
마지막날이 걱정되는거지.
엄청 빠른 녀석과 겨루기를 해야 하잖아.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잖아?
한사람만 빼놓고는 다 했어.
내일이면 그녀석과 시합을 해야 하는거야.
다음날 나는 조용히 운동만 했어.
그녀석이 은근히 기다리는것 같았지만 모른체 했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녀석과의 스파링은 안했어.
자신이 없으니까 안했다기보다는 못한거지.
그렇게 몇일이 지나가니까 그녀석이 나에게 말을 하더군.
"사범님, 저 하고도 한번 해주셔야죠?"
피할수가 없게 되었어.
"그래, 내일 하자."
퇴근길에 발걸음이 무겁더군.
다음날 출근길은 더 무거웠어.
`오늘 겨루기를 하고 사표를 써야겠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운동할 기분이 나겠냐구?
초등학생, 중학생들 모두 자율운동을 시켰어.
어찌됐건 겨루기는 열심히 해봐야 하잖아.
계속 몸을 풀었어.
그리고 마지막 타임이 되었지.
"지금부터 10분간 각자 몸을 풀어준다."
10분이 지났어.
"지금부터 딱 5분만 겨루기를 할거야."
나는 그녀석을 앞에 세워 놓고 말했어.
<시작>소리와 함께 발이 날라오더군.
나는 회전법을 이용해서 상대의 공격을 흘렸어.
사실 회전법은 태권도에서 없는 기술이야.
합기도의 원(圓)에 대한 원리거든.
하지만 아이들과의 시합에서는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
회전법을 이용한 후에는 내가 상대방에게 공격을 하는건데 그럴수가 없었어.
그녀석의 다음 공격이 날아오고 있었거든.
나는 회전법을 이용해서 녀석의 공격을 또 흘려냈어.
정말 힘들더군.
녀석의 스피드는 장난이 아닌거야.
아무리 흘리고 흘려도 내가 발을 들 시간조차 없었어.
나는 공격을 할 수가 없었던거야.
결국 5분 내내 나는 단 한번도 발을 들지 못했어.
회전법으로 공격을 피하기만 했을 뿐이지.
관장님이 오시면 그만두겠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자율운동을 시켰어.
수련이 끝나고 사복으로 갈아 입는데 녀석이 나에게 오더군.
"사범님, 저하고 호프 한 잔 하실수 있으세요?"
나는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한 잔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녀석은 고등학생이 아닌 일반인이였거든.
고등학생 두명과 녀석, 그리고 내가 호프집에 들어가서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어.
당연히 고등학생들은 음료수를 주문했지.
녀석이 무슨말을 할까 궁금했지.
잠시 침묵이 흐르고 녀석이 말했어.
"사범님, 저는 사범님이 오시기 전에 국가대표 선수한테서 태권도를 배웠어요."
국가대표를 했던 선수가 잠깐 사범으로 있었던 적이 있대.
그러니까 그렇게 잘하는 거였나봐.
좋은 스승 밑에서 실력있는 아이들이 배출되는건 당연하잖아.
녀석의 말이 이어졌어.
"여기 오시는 사범님들이 저 때문에 한달을 못 버티고 나갔었어요."
그럴만도 했겠다 싶었어.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반전이 있었던거야.
"제 공격을 한대도 안맞은 사람은 사범님이 처음이에요. 저한테도 그 기술을 가르쳐주세요."
내가 말했어.
"그 기술은 사실 태권도 기술이 아닌 합기도 기술이야. 너는 시합에 출전할거라면서?"
"네, 시합을 뛰고 싶어요."
"그럼 안돼, 시합에서 이 기술을 쓰면 반칙이야."
"반칙이라구요?"
"그래, 아직은 이 기술을 배우지 말고, 나중에 시합을 안뛰게 되면 가르쳐줄게."
녀석은 마치 내가 봐줘서 자기가 안맞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나는 미처 발을 들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네가 너무 빨라서 발을 들 수도 없었다는 말은 안했지.
조용히 수련을 하다가 내가 체육관을 직접 차리게 되어서 그 체육관을 그만두게 되었어.
다음 사범을 구할때까지만 있기로 했지.
녀석이 나에게 말하더군.
"사범님, 가시기 전에 저하고 한번만 더 시합을 해주세요."
"싫어."
"왜요?"
"태권도로 하면 나는 너를 이길수 없어, 네가 훨씬 더 잘해."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더 해주세요."
"내가 졌다니까?"
녀석은 나의 솔직한 말을 믿지 않았어.
그렇게 피하다가 체육관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
"사범님 오늘이 지나가면 끝이잖아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상대해 주세요."
"내가 졌다니까? 내가 지는걸 뻔히 아는데 내가 너랑 왜 하겠냐?"
"한번만요~"
녀석은 내게 애걸하다시피 말을 했어.
"내가 태권도 합기도를 모두 수련했다는거 알지?"
"네."
"나는 태권도보다 합기도를 더 오래 수련했어. 그래서 태권도 기술만 가지고 하면 자신이 없어. 이미 합기도 기술이 몸에 배어 있거든."
"그럼 합기도 기술도 같이 쓰세요."
"그럼 네가 불리해."
"괜찮아요."
"합기도는 허리 아래도 공격이 가능하고 붙잡아도 되는데 태권도에서는 반칙이잖아? 그래서 시합에 나갈 너랑은 하면 안되는거야. 알겠어?"
"괜찮아요, 한번만 해주세요."
"그래? 정말 그래도 하고싶어?"
"네."
나는 그녀석과 3분만 해보자고 했어.
역시 시작과 함께 발이 날라오더군.
나는 회전법을 쓰지 않았어.
쓸 필요가 없거든.
녀석의 발을 잡고는 녀석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
녀석이 놀라더라구.
일어나더니 다시 공격을 하는데 나는 또 발을 잡고는 발을 걸어 넘어뜨렸어.
그 빠른 발을 잡아서 제압을 당하니까 당황을 하더라구.
사실 발이 아무리 빨라봤자 손보다 빠를수는 없지.
3분을 채우지 못하고 녀석이 기권을 했어.
"우와~, 안할래요."
"그래, 너는 아직 이런 기술들을 배우지는 마."
"아니에요, 사범님 어디서 체육관 하실거에요? 거기로 따라갈게요."
"아니야, 나는 합기도체육관을 차릴거야. 그리고 네가 따라 오면 나는 여기 관장님에게 죄를 짓는게 되는거야."
"여기도 다니고 거기도 다닐게요."
"아니야, 한달에 한번쯤 오는건 내가 허락할게. 물론 여기 체육관을 계속 다니면서 말이지."
"알겠습니다. 꼭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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