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합기도에 입문하고 열심히 수련에 정진하던 어느날 선배님이 <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은, 특히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해. 내가 아는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때 그걸 모른체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의리라는게 많이 사라졌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면 모른체하는게 대부분이지. 아직까지 의리라는게 살아있는 곳은 무술계통과 군대, 그리고 조폭들밖에 없어. 참 아쉬운 일이지."
몇 해가 지나고 나는 태권도도 수련을 하기 시작했고 기회가 되는대로 검도와 쿵후도 수련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나도록 무술계통에 어떤 의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태권도 4단 승단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체육관 관장에게 접수를 했고 국기원에서 승단심사를 본 후, 관장은 나에게 불합격이라며 재심사를 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얼마의 심사비를 지불하고 두번째 심사를 봤지만 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시 재심사를 보라고 했을때 나는 더 수련해서 심사를 보겠다고 하고는 접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른체육관의 사범으로 재직할때 그곳 관장님으로부터 내가 첫 승단심사에서 합격했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두번째 심사는 어떻게 된것이란 말인가?
합격된 사람이 같은 단수의 심사를 또 볼 수가 있단 말인가?
답은 간단했다.
나는 첫심사에 합격을 했고, 두번째의 심사는 다른 누군가의 심사를 대신 봐준것이라고 한다.
그 관장은 나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모두 심사비를 받았던 것이다.
이것이 무술계통의 의리인가..
1980년대 초 나는 군대를 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키가 커서 현역을 가지 못하고 방위근무를 했다.
1개월동안 부대에 입소해서 군인으로서 해야 할 기초 훈련을 받았고, 중대본부에 배치되어 예비군 담당 업무를 보았다.
1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복무기간동안 어떤 의리있는 행동을 본적이 없다.
예비군 중대본부에는 동대장이란 직책이 있다.
우리가 근무하는곳의 동대장은 출근을 할 때보다 안할 때가 많았고, 출근을 해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우리는 대장이 없는 방위병들끼리만 근무를 했는데, 1년에 한번이라는 감사가 시작된 날, 동대장은 어쩔수없이 중대본부에 머물러 있었지만 감사위원들이 묻는 질문에 아무런 답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재감사를 받게 되었고, 재감사에서도 불합격되면 동대장은 옷을 벗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음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동대장은 열심히 출근하여 이것저것 서류를 갖추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모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성에게 마음이 빠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동대장이 중대본부의 일을 안보고 여성에게 빠져 돌아다니는 것에는 분명 잘못이 있지만 누구하나 동대장을 위로하거나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뒷전에서 욕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이제와서 뭘 하려고.."
"진작에 좀 잘하지.."
이런 구설들은 단지 우리 중대본부에 관여한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중대본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올랐다.
나는 중학교때 배운 오십보 백보라는 한자 성어가 생각났다.
자기들도 그렇게 깨끗하거나 청렴한 사람들은 아닌데, 저렇게 남의 욕을 하는걸 좋아할까..
나는 조폭생활을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조폭들이 의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느껴본적은 없지만 그런 생활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리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약한사람이 강한사람에게 어쩔수 없이 뭔가를 해주는건 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세상의 의리라는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납주머니 (0) | 2022.04.26 |
---|---|
뭐가 바른 삶인가.. (0) | 2022.04.01 |
PCR 검사. 나만 불만인가? (0) | 2022.02.07 |
임인년(2022년) 운세 (0) | 2022.01.03 |
동지(冬至)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