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유일한 나들이
어머니의 유일한 나들이이자 즐거움은 절에 가시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가시고 싶어 하지만 몸이 아플 때, 내가 약속이 잡혀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한달에 두 번 모시고 가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절은 양주에 있는 지장사라는 곳이다.
집을 나와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의정부를 지나면 양주가 나타나고, 지장사는 덕계리에 위치한다.
덕계리 저수지를 지나다보면 언제든지 앉아있는 낚시꾼들을 볼 수 있다.
길이 안 밀리면 대략 50분 정도 소요된다.
어머니께서 이 먼곳까지 오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태 불교인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정릉에 있는 경국사에 다니셨었다.
그곳에서 같은 신도들끼리 불공을 드린 후에 사경(붓글씨로 불경을 쓰는 일-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쓰신 사경으로 병풍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을 하는 것을 락(樂)으로 삼으셨다.
어느날 사경을 지도하시던 스님께서 어떤 사정으로 인해 양주에 지장사를 세우셨는데, 이때 사경을 같이 하던 신도들이 모두 지장사로 따라 오셨다고 한다.
그것이 벌써 18년이 흘렀다.
18년 전의 지장사 가는길은 덕계리에서 비포장도로를 약 3km 정도 달려야 했으며, 대웅전도 산신각도 아무것도 없이 100평 정도의 기와집에서 불공을 드렸었으나, 날로 번창하여 지금은 꽤 유명하고 큰 절로 탈바꿈하였다.
어머니께서 절에 가실때면 그 전날부터 분주하다.
집에서 염색을 하고, 목욕을 하고, 미장원에가서 머리도 하신다.
무서움을 많이 타시는 어머니는 간혹 그 전날에 내가 밖에 나가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하신다.
당일 아침에는 새벽 5시경부터 분주하시다.
세수하시고, 화장하시고, 옷 이쁜것으로 차려 입으시고, 핸드폰 챙기시고, 보청기 하시고..
집에서 나가는 시간은 대략 8시 반정도.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항상 챙기는건 사탕처럼 비닐로 말아 싼 밀크 캬라멜.
차를 출발함과 동시에 어머니께서는 불경을 외우신다.
약 5분 정도 소요되는 불경이 끝나면 나는 라디오를 켠다.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가 지지직거리기 시작하면 양주에 진입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오시는 내내 주무신다.
어젯밤부터 잠을 설쳤으니.. 연세도 높으신데..
지장전 앞에 차를 세우고 어머니께서 내리면 나는 다시 조금 내려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어머니를 모르는 신도는 가입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 뿐이다.
시주는 많이 못했어도 지장사 창단멤버(?)이니 당연한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머니께 달려와 인사를 한다.
기와집 제일 끝쪽에 있는 방에 들어서면 지장사의 원로(元老)들이 앉아서 쉬고 계신다.
어머니는 그곳에 가서 다른 원로들과 담소를 즐기신다.
나는 반야보탑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드리고는 절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본다.
절의 뒷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수목장 터가 있다.
원래 있던 나무들을 제거하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돌아가신 분 1인당 나무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어머니께서는 이곳에 묻히고 싶어 하신다.
생전에 즐겁게 다니시던 곳에, 떠나서도 이곳에 있으면 불경도 듣고, 아는 신도들도 가끔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하신다.
아직은 가파른 언덕길에 비라도 내리면 어쩔까 싶기도 하지만 절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곳도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오전 11시가 넘으면 공양이 시작된다.
오전 불공이 끝나기도 전에 공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머니께서도 불공이 끝나면 복잡해진다고 하시면서 일찍 공양간에 들어서신다.
개개인이 밥을 뜨고 절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채소와 나물을 조금씩 얹고, 또한 절에서 손수 만든 고추장에 비비는 비빔밥은 절에서만 맛볼수 있는 별식이다.
또한 지장사에서는 공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후식으로 약간의 과일도 주고, 커피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있으며, 집에갈 때 먹으라고 4~6쪽 정도의 징편도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평소 장사하는 사람들이 덤을 주어도 절대로 받지 않는 성격의 어머니는 부처님 앞에 놓았던 음식이라 복을 받는 음식이라면서 나누어주는 공양주에게 몇 개 더 달라고 하여 가방에 넣으시고는 집으로 돌아와 옆 동에 사시는 누나에게 나누어주곤 하신다.
공양이 끝나면 어머니는 다시 원로들의 방으로 가서 담소를 나누신다.
보통 절에서 나오는 시간은 12시에서 1시 사이다.
어머니는 몇몇 신도들에게 지금 갈 사람이 있느냐 물어보시고는 몇몇분을 차에 함께 타게 하신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양주역에서 내린다.
어머니와 친한 신도 한 분은 수유리까지 모셔드리기도 한다.
수유리로 향할때는 도봉구 방향으로 집에 오는데, 번번히 길이 밀린다.
어머니는 양주역까지 신도들과 담소를 나누시다가 그 후에는 조용히 주무신다.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만사를 제쳐두고 1~2시간 주무신다.
차를 탄다는 것은 꽤 피곤한 일이다.
올해로 89세가 되신 어머니께서 양주를 다녀오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요일만 다가오면 은근히 절에가실 준비로 마음이 설레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절을 매주마다 가지 못한다는 것이 죄송스럽다.
어쩔 수 없는 연세 탓으로 여기저기 아픈 곳은 많지만, 아직 치매도 없으시고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이 기분 좋다.
내일은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서 절에 가지 못한다.
어머니께서 말씀은 안하시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가고 싶어하실 것 같아 마음이 짠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