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 이야기

활법이야기 63

전통활법 2022. 4. 24. 12:28

지인의 소개를 받았다면서 60대 초반의 여성이 방문했다.

"요즘 너무 어지러워서요. 여기 오는데도 몇번을 쉬었다 왔는지..."

어지럽다는것은 목의 문제일 것이고 걸음을 오래 걷지 못하다는것은 허리의 이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전체적으로 척추에 대해 진단을 했으나 별다른 이상은 찾을수 없었다.

약간의 골반회전, 약간의 다리 길이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어지러운 증상과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했다.

"척추에 대해서 크게 이상이 있는건 아닌데요. 이정도의 척추면 거의 정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척추에 이상이 없다는건 좋은 말인데, 저는 왜 이렇게 어지러울까요?"

척추에 이상이 없다면 다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지럽다는건 일단 머리를 의심해야 하는데 머리에 이상이 있다면 경추에 분명히 나타나야 할것이고..

경추에 이상이 없다면 뭐가 잘못된걸까..

"요즘 뭔가 달라진 일상이 없나요?"

"무슨말이죠?"

"예를들어 예전에 안했던 뭔가를 하신다거나 뭔가를 지속적으로 드신다던가.. 이런것 말입니다."

"요즘 하는건 공부를 좀 하는데요?"

"어떤 공부죠?"

"좀 늦은감이 있긴 하지만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잘 외워지지를 않아서 힘드네요."

"연세가 들면 아무래도 암기력이 좀 떨어지겠죠."

"같이 배우는 학생들이 있는데, 제가 거기서 제일 나이가 많거든요. 나이는 제일 많아가지구 학생들보다 못하면 안되죠."

"젊은 아이들을 어떻게 쫒아가겠어요? 그냥 천천히 하셔야지.."

"아니죠, 이왕 하는거 제가 젊은사람들에게 뒤쳐지면 안되지요."

"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공부하시는데요? 좋은 방법이 있나요?"

"암기가 안되니까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해야죠. 요즘은 잠 자는게 아까워서 커피를 먹으면서 공부를 해요."

"커피요? 하루 몇 잔이나 드시는데요?"

"몇 잔이 아니구요, 그냥 가루채 먹고 있어요."

"예?"

나는 깜짝 놀랐다.

잠을 쫒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는 사람들은 주위에 여럿 있지만 커피믹스를 물에 섞지 않고 그냥 먹는다는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걸 얼만큼이나 드세요?"

"하루에 두 세개 정도... 그래도 잠이 오면 일곱개를 먹은적도 있어요."

"어지러운 원인이 나왔네요. 바로 커피 때문이었네요."

"커피요?"

"커피에는 카페인이란 성분이 있잖아요? 적당량의 카페인 섭취는 우리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며 이뇨작용을 통해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등 신체에 이로운 작용을 하지만 카페인을 과다섭취하면 철분이나 칼슘이 흡수되는걸 방해한다고 합니다. 그럼 빈혈도 생기고 성장기에는 성장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구요, 뇌를 각성시켜서 불면증이 생기거나 행동에 불안감, 정서장애가 생기기도 하구요, 심장 박동수를 상승시켜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혈압을 상승시키지요. 카페인으로 집중력이 향상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순간적인 느낌이구요, 실상은 더 나빠지는겁니다."

"커피가 그렇게 안좋은거에요?"

"그럼요, 하루 한 두잔은 괜찮겠지만 물에 타지도 않고 가루로 복용하셨다니 아이고... 커피만 끊으시면 어지러움증은 사라질것 같습니다."

"그럼 공부가 뒤떨어질텐데.."

"공부는 천천히 하시구요, 그러다가 쓰러집니다. 쓰러지고 나면 공부고 뭐고 다 필요없어요."

"적당량이란게 얼만큼을 말하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어떤사람은 술 한잔에도 취하지만 어떤사람은 술고래들도 있잖아요? 당분간은 끊으시구요, 좀 괜찮아지면 하루 한잔 정도는 괜찮을듯 싶어요."

"알겠어요. 일단 커피를 끊어볼게요."

 

여성이 돌아가고나서 잠시 의문이 생겼다.

`커피를 가루로 먹으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그때의 기분은 어떨까..`

어지럽다면 어느정도로 어지러운걸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직접 실험해보기로 했다.

커피믹스를 구입해서 물 없이 한 개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삼켰다.

프림도 있고 설탕도 있겠지만 역시 커피는 쓰다.

5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별다른 증상은 없어서 한 개를 더 털어 넣었다.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참아보기로 했다.

머리가 조금 아파오는가 싶더니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술에 취해서 어지러운것 하고는 다른 느낌이다.

자리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천장이 조금씩 물결치듯 움직인다.

다시 일어나 앉으려니까 머리에 화살을 맞은듯한 순간적인 찌릿함과 강한 두통이 느껴져서 곧바로 다시 누웠다.

누군가 강한 힘으로 머리를 조이는것 같은 느낌과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 겹쳐서 나타난다.

실제로 천장이 물결치듯 움직이는게 눈에 보인다.

이런게 환시(幻視)이고 환각(幻覺)인가보다.

천장은 분명 가만히 있을텐데 내 눈에는 움직이듯이 보이니까 말이다.

어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하면서 그 여성은 하루 7개까지 복용했다니 더 깊은 증상까지 겪었겠지만 거기까지 느껴볼 생각은 없어서 일어나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신다고 어지러운 증상이 멈추지는 않았다.

아마도 몸의 내부에서 카페인의 나쁜점에 대해 사라지도록 노력하는데에도 시간은 걸릴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잠을 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