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법 이야기 53
물에 끓인 핫팩을 수건에 싸서 누워있는 어머니 허리 밑에 깔아 드렸다.
"뜨거운데 계속 이러고 있어야 되니?"
"너무 뜨거우면 잠시 다른 부위에 깔았다가 다시 허리에 대세요."
핫팩의 찜질 효과는 30분 정도 지속되는것 같았다.
핫팩을 빼고 어머니를 엎드리게 한 뒤에 허리근육을 보니 벌겋게 변해 있었다.
근육을 천천히 만졌더니 겉근육만 부드러워졌을뿐 속근육은 딱딱하다.
핫팩이 속근육까지 부드러워지도록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근육을 비비듯이 푸는건 생략할 수 있었는데, 시간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시간이 들지만, 내 노력은 들지 않으니 어떤게 더 좋다고 말할수는 없을듯 했다.
허리근육을 푸는데 속근육을 풀려면 그냥 엎드려 있는 자세 보다는 엎드려서 한쪽 다리를 무릎을 굽혀서 옆으로 올리게 하고 푸는게 수월하다.
이때도 손보다는 팔꿈치의 아랫쪽 팔목을 이용하면 더 잘 풀린다.
근육을 풀고 나서 척추를 중심으로 대각선으로 한손은 견갑골 부분을, 다른손은 반대쪽 골반능에 대고 양쪽으로 천천히 밀어주면서 근육을 신전시킨다.
교정은 다음부터 할 예정이다.
2회 정도는 근육에 대하여 풀어주고 신전해주기만 한다.
척추를 잡고 있는 근육이 풀리지 않으면 척추를 교정하는게 위험할수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임해야 한다.
합기도장에 가니 조관장님이 나와계셨다.
오늘은 자신이 운동을 지도할테니 그냥 같이 운동하라고 한다.
관원생들은 운동을 수련하면서 중간중간에 조관장님에게 웃으면서 질문도 하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호신술 시간에는 거의 장난 분위기다.
호신술은 정확하게 원칙대로 수련해도 실전에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저렇게 장난을 하면서 수련한다면 호신술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호신술이 끝나고 한줄로 서서 낙법을 한다.
일면 고양이낙법이라고 하는 구르기를 하는데, 고양이는 감각기관이 발달해서 어느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사뿐히 내려 앉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합기도 초단 승단시험을 볼 때, 고양이낙법을 길게는 엎드린사람 8명을 넘어야 했고, 높이로는 자신의 목높이를 점프하여 넘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조관장님이 죽도를 자신의 키만큼 올려 잡고는 나에게 뛰어 넘으라고 한다.
내가 아무말 없이 달려나가 점프하여 죽도를 건드리지 않고 고양이 낙법으로 해결했더니 관원생들이 놀라워 한다.
합기도장에서는 가끔 이런 모습으로 관원들과 사범사이를 구분지어 놓기도 한다.
누군가 처음 체육관에 등록을 했을때, 미리 체육관에 있던 사범이나 관장은 그런 구분이 필요가 없지만, 수련하고 있는 중간에 새로 온 사범이라면 관원들이 의심을 할때도 있기 때문이다.
관원들보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암시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표현을 하는것이다.
수련이 끝나고 조관장님이 나에게 아침이나 같이 먹자고 해서 근처 해장국집으로 갔다.
"운동하는게 옛날하고 다르지?"
"그러네요, 어떻게 수련을 하면서 웃으면서 하는지..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래. 50~60년대엔 6.25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힘이 없으면 살기 어려웠거든.. 길을 가다가도 괜히 시비를 걸어서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수련도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70년대만 하더라도 합기도장도 서로의 구역이 있었어. 예를들어 서울의 동쪽엔 진중관이 있었고, 의정부나 동두천 쪽에는 비룡관이 있었지. 관이 다르면 다른 동네에 가서 도장을 차리기도 어려웠었어. 텃세가 심했거든.."
"그랬어요?"
1974년에 합기도에 입문한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나라가 안정되니까 힘이 있을 필요가 적어졌지. 전쟁을 겪었던 세대들은 노인이 되어가고,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모르거든.. 누가 누구를 함부로 때릴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자기 몸을 보호하는 운동도 그 실체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것 같아. 지금은 옛날처럼 운동을 가르치면 관원생들이 모이질 않아. 그저 건강을 지키는 정도로 하는거지."
"그래도 정말 운동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요?"
"있지. 하지만 그렇게 많지가 않아. 체육관을 운영하는 관장이나 사범들은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겠지만 옛날처럼 곧이 곧대로 수련을 하면 관원들이 별로 없지. 매달 월세도 내야 하고, 이것저것 나가는 돈이 있는데, 최소한 체육관을 운영하기에 필요한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어?"
아마도 새벽부 수련을 농담도 하면서 좀 부드럽게 하라는 뜻인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해졌다.
부녀회장님이 나를 반긴다.
"몸이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좋아지는게 느껴지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감사드려요."
"윗층에 사는 아주머니와 이야길 나누다가 제가 사범님에게 교정을 받고 있는데 너무 좋아졌다고 하니까 자기도 받아보고 싶다고 하는데, 사범님 시간이 되시겠어요?"
"저야 감사하죠. 지금은 배운걸 계속 수련해서 익숙해져야 되거든요."
"그럼 지금 연락해서 오라고 할까요?"
"아니요, 회장님 봐드리고 나면 아이들 운동 시간이라서.. 내일부터 제가 좀 더 일찍 올게요. 내일부터 하시는걸로 전해주시지요."
"아~, 그럼 그렇게 전할게요. 그리고 가격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저도 가격은 몰라요.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다른곳에서는 얼마를 받는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만족하구요, 나중에 좋아졌다고 생각되면 차비로 조금만 주세요. 내일 오시는분도 그렇게 하자고 하면 되구요."
"그건 아니죠, 우리가 병원에 가도 비용이 드는데, 이건 우리가 갈 필요도 없이 사범님이 오셔서 해주시는 거잖아요?"
"그건 체육관하고 가까우니까 그런거구요.. 그럼 나중에 정말 두분이 다 좋아지시면 체육관에서 아이들 수련시간 외에 제가 활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체육관은 부녀회장님 권한으로 가능하시다면서요?"
"체육관에서 하시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하시면 되요. 제가 말해 놓을게요."
"정말요? 아~ 감사합니다."
체육관에서 활법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뻤다.
다른 공간을 빌리려면 보증금도 필요하고, 매달 월세도 내야 하는데, 체육관이라면 한쪽 끝으로 커텐만 치고 하면 되니까 따로 돈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오늘부터는 근육을 풀고 나서 교정도 할거에요."
"네."
"혹시 팔이나 다리가 저리거나 시린, 불편한 부분이 있나요?"
"가끔 다리가 저릴때가 있어요.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가요."
"어느쪽 다리가요?"
"왼쪽다리가 저립니다."
이제는 전체적인 근육을 풀 필요는 없다.
척추를 중심으로 좌우를 비교해서 뭉친곳만 풀어주면 된다.
어차피 좌우 근육의 균형이 맞으면 되는거니까.
따라서 등근육은 오른쪽만, 허리근육은 왼쪽만 풀고, 골반능은 오른쪽, 천골은 다 풀어준다.
지난번에 비해서 시간이 줄어들었으므로 나머지 시간에는 가끔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는 왼쪽 다리 근육을 풀어준다.
"오늘은 다리도 풀어 주시네요?"
"왼쪽 다리만 풀거에요."
"왼쪽만 저린증상이 있어서 그런가요?"
"네."
"왼쪽다리는 왜 저릴까요?"
"저도 자세한건 잘 모르구요, 허리디스크나 좌골신경통이 있으면 다리가 저릴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럼 저는 뭣때문에 그런건가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허리디스크 여부는 X-ray를 찍어야 알 수 있을테고, 좌골신경통은 좌골을 지나는 신경의 문제라서 제가 이상이 있다 없다를 말씀드릴수는 없어요. 단지 허리뼈는 약간 왼쪽으로 측만변형이 되어 있고, 골반은 오른쪽이 상향되서 시계방향으로 회전변형된 상태이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의 위험성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저의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다리가 저린 부분은 허리디스크나 좌골신경을 제대로 교정하면 자연히 사라진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허리디스크나 좌골신경통이 발생한지 얼마 안됐을때의 이야기일것 같구요,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다리도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힘들게 다리까지 풀어줄 필요가 있을까요? 받는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가령 아주 추운 겨울에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놓고 물을 조금 틀어놨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간이 흐르면 수도가 얼겠죠?"
"그러겠죠."
"그럼 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나오는것도 있겠지만 호스를 통해서 흐르던 물도 호스 안에서 얼어 있겠죠? 수도를 녹여서 물이 잘 나오게 한다고 하더라도 호스 안에 얼어 있던 물도 녹을까요?"
"날씨가 춥다면 계속 얼어 있겠죠."
"다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되요. 다리저림에 대한 증상도 시간이 흘러서 오래 되었다면 허리디스크나 좌골신경통을 고치더라도 다리는 계속 저리지 않을까요? 물론 사람의 몸이라는건 호스 안의 물과는 좀 다르겠지만, 어쨋던 같이 녹여주면 더 빠르게 좋아지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