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 이야기

어머니의 배웅

전통활법 2020. 9. 3. 13:54

오래전 고등학교를 다닐때 내가 살던곳은 창신동 꼭대기의 낙산아파트였다.

총 28개동으로 이루어졌던 아파트 중에서 내가 살던 19동에서 창문 밖으로 보면 꼭대기를 향해 올라오던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이었다.

내가 학교를 가려고 밖을 나서면 어머니는 항상 창가에 서서 내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며 잘다녀 오라면서 웃음을 지어 주셨다.

 

20대 후반이 되어 산에서 내려와 창신2동의 평지에 살았을때에도 어머니는 골목 귀퉁이까지 나오셔서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셨다.

 

30대 후반에 지금의 창신1동 두산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하여 밖으로 나오면 그곳에는 항상 어머니가 서 계셨다.

역시나 차가 사라질때까지 어머니는 손을 흔들면서 그자리에 계셨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밖으로 나오시지 않고 복도 끝까지 걸어 오셔서는 그곳에서 내가 차를 몰고 가는것을 보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러더니 40대 후반이 되었을때에는 그저 문을 열고 문앞에 서서 걸어 나가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나는 7남매 중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40이 다 되어서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연세는 꽤 높으시다.

요즘 어머니는 배웅을 안하신다.

어디를 다녀온다고 말씀을 드려도 1분도 안되서 잊어버리신다.

외출을 할때면 어디 가느냐고, 언제 들어 오느냐고 몇번을 묻고는 하신다.

 

어머니는 지금 치매이시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은 알아 보신다.

오늘이 몇일이냐?

지금이 낮이냐 밤이냐?

밥 먹어야지?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다.

 

"막둥이를 결혼시켜야 하는데.."

"아이구, 엄마 내가 지금 몇살인데 결혼을 해요?"

"니가 몇살인데?"

"내가 좀 있으면 환갑이에요?"

"환갑이라구? 그럼 나는 몇살이냐?"

"엄마가 96세 예요."

"하하하, 그런 거짖말은 어디가서 하지 말아라, 거짖말도 믿을 만하게 해야지."

"그럼 엄마 연세가 지금 얼만데요?"

"내가... 일흔 여덟인가..? 아직 팔십은 안됐는데.."

 

나는 결혼을 하지 못했다.

몇몇 여자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가 반대를 하셨다.

반대하는 어머니를 원망도 많이 했지만 나중에 사주공부를 하면서 내 팔자에 여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중팔자가 나였다.

설령 사주가 믿을만한게 못된다 하더라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사라졌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밖에 나가서 바람좀 쐬야겠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밖이란 문을 열고 복도에 서서 바깥 바람을 쐰다는 것이다.

다리에 힘이 없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하시다.

복도에 나가시는것도 옆에서 부축을 해드려야 한다.

그저 일어서시려다가 넘어진 적도 몇번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 곁에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럴때 휠체어라도 타시면 동네라도 한바퀴 돌수 있을텐데..

"내가 어디 불구자냐? 휠체어를 타게?"

어머니 스스로가 걷기 힘들다는걸 인정하지 않으신다.

 

어렸을때, 절은시절, 아니 얼마전까지도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던 일들이 후회된다.

육성회비를 못내서 선생님에게 벌받은걸 어머니에게 화풀이 했던 국민학교시절.

왜 새옷은 형만 사주고 나는 형이 입었던 옷들만 입으라고 하느냐고 투정부렸던일.

지방에 가서 태권도체육관을 한다고 했을때 고생한다고 반대했던 어머니에게 화냈던일.

치매로 했던말을 또하고 또했을때 짜증냈던 모든 일들이 후회된다.

 

얼마전부터 아르바이트로 데이케어센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어르신들을 집으로 모셔 드리는 차량 운전을 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을 모셔다 드리는데, 어떤분은 종일 침을 흘리시고, 어떤분은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하신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다리에 힘이 없어서 차에 오르는것을 보조해 드리고, 차에서 내리실때에도 부축을 해야 한다.

휠체어를 타는 분들도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선생님 좀 천천히 갑시다."

차는 천천히 운행한다.

골목길이고, 그나마 한쪽으로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많아서 차를 빨리 운행할수도 없다.

그런데도 천천히 가자는 말을 반복해서 하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넵, 알겠습니다."

차는 천천히 가지만 할머니 말씀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수긍을 하면 만사가 부드러워진다.

 

정동원이 부른 여백이라는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이 말을 다른쪽으로 바꾸고 싶다.

<다른 어르신 케어는 잘하면서 우리 어르신 케어는 못하고 사네.>

지금부터라도 어머니와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후회와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