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법 이야기 17
오늘은 한달에 한번 하는 체육관 정기 승급심사가 있는 날이다.
이런날은 일찍 오는 아이들이 없다.
심사 시작전 한시간 정도쯤에 아이들이 모여드는데, 간단하게 기본운동을 하고서 각자 개인연습을 한 후에 심사 10분전에 정렬을 시켜 놓으면 된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나는 심사원서를 정리하고 심사비를 낸 아이들을 따로 체크하고, 책상을 옮겨 놓고는 책상 위에 아이들이 받아갈 트로피와 상장, 급수의 상징인 띠들을 한쪽으로 올려 놓는다.
아이들은 모르지만 트로피와 상장의 주인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한달간 수련하면서 제일 잘하는 아이를 두면 선정하여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주고, 잘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나오는 아이에게 모범상을 준다.
그러나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상을 못받으면 안되므로 아이들 순번을 정하여 누구나 한번 이상은 받을수 있도록 정한다.
가끔 자신이 상을 받을것을 모르는 아이가 결석을 하게되면 심사관이 심사평을 하는 사이에 새 상장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곳으로 오시는 심사위원님은 반포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추광호관장님이셨다.
우리 관장님의 이야기로는 자신의 군대 상사이기도 했고, 6.25 참전 용사에 월남전에도 다녀 왔고, 투스타로 제대 하셨다고 하니 굉장히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에는 심사위원으로 오신 추관장님과 우리 체육관 관장님이신 정관장님이 앉아 계셨고, 아이들은 정렬되어 서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대한태권도협회 한신체육관 제 30회 정기 승급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국민의례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는 아이들을 뒷쪽으로 정렬시켜 앉도록 한다.
심사는 낮은 급수자들부터 시작되고 발차기, 품새, 겨루기로 진행이 된다.
어느 체육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나온 아이들은 모든게 엉성하기에 심사관이나 학부형들에게 웃음을 짓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아이들은 실력이 가장 좋은 아이들이므로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과 박수를 치게 하였다.
심사가 끝나면 심사관으로부터 심사평을 듣고, 몇몇 아이들은 상장과 트로피를 받는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놨군. 언제 우리 체육관에도 한번 놀러오게."
"체육관이 어딥니까?"
"여기서 걸어와도 될거야. 한 20분 정도 걸릴걸?"
"알겠습니다."
오랫만에 중학교 동창이던 김현이와 만나기로 했다.
현이는 요즘 경희대학교에서 한의학 공부를 하고 있다.
문득 고등학교 체력장 시험을 보던날이 생각난다.
1Km 오래달리기를 하던중 나는 너무 숨이 차고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때 현이가 달려 나와서 나의 등을 밀어주며 나를 완주시키고는 정작 자신이 뛸 때에는 숨이 차서 기권을 했다.
미안해서 어찌할줄을 모르는 나에게 괜찮다면서 웃음지어준 친구였다.
고등학교때는 연락이 끊겼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는 사회인이 되면서 다시 연락이 된 친구이기도 하다.
"잘 지냈어?"
우리는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요즘 어떻게 지내?"
"오전엔 활법을 배우러 협회에 갔다가 오후에는 태권도 사범생활을 하고 있어."
"그래? 활법이라는게 뼈 교정하는거지?"
"응, 맞아."
"잘됐다. 나도 그걸 좀 배우고 싶었는데.. 나좀 가르쳐 주라."
"그래, 나도 잘됐다. 내가 활법을 가르쳐 줄테니 너는 나에게 침술좀 가르쳐 주라."
"침술? 나도 아직 모르는데 어떡게 널 가르쳐 주겠냐?"
"학교에서 배울거아냐? 배운 만큼만 알려주면 되지."
"침술은 좀 더 배운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고, 일단 한의학 기초인 음양오행에 대해서 알려줄게."
"그것도 좋고.."
"한의학에서 인간은 소우주라고해. 우주의 원리가 인체에 다 모여 있다는 뜻이야."
"예를들면?"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지구는 하나고, 지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는 하나야. 지구엔 오대양 육대주가 있고 사람에겐 오장육부가 있지, 지구엔 사계절이 있듯이 사람에겐 팔과 다리의 사지가 있고, 1년은 12달이듯 사람에겐 12경락이 있지..."
"와... 어떻게 그렇게 잘 짜맞추냐? 지구에 사계절이 있지만 사람 머리는 하나잖아?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같은 수끼리 연관을 시키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의학을 배울수 있는거야."
"물론 그렇겠지만 누군지 몰라도 머리가 되게 좋은 사람이네."
"그래서? 계속 할까? 말까?"
"계속 해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들을게."
"아뭏든 이렇게 연관이 되고 인간은 소우주라고 해."
"알았어."
"그리고 음양오행이 중요한데, 먼저 음양에 대해서 말해줄게. 가장 큰 양은 무엇일까?"
"태양이겠지?"
"그래, 가장 큰 음은 달이야.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고, 밝음은 양, 어두움은 음이지, 그런데 사람 몸에도 음양이 있어."
"몸 중에서 빛을 받는 부분은 양이고 그늘진 곳은 음이겠지?"
"그렇지, 사람 몸에서 등이 양일까? 가슴이 양일까?"
"가슴이 양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는데, 등쪽이 양이야. 인중혈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회음혈까지를 임맥이라고 하는데 이게 음맥이고, 회음혈에서 등쪽을 지나 인중혈까지를 독맥이라고 하는데 양맥이거든, 사람이 걸음을 걷거나 서있을때를 생각하면 혹은 어떤 동작을 취할때를 보면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경우가 많지만 상체를 뒤로 젖히고 걷는 사람은 보기 힘들어. 그래서 가슴이나 배쪽이 음이 되는거야."
"그러고보니 그렇네."
"인체의 몸에서 음양은 제각기 자기의 역할을 해야 하거든, 음은 음대로의 역할이 있고 양은 양대로의 역할이 있는데 음이 양의 역할을 한다던가 양이 음의 역할을 하게 되면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고 해. 예를들어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이라면 발바닥을 벌리고 걷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다리의 안쪽이 노출이되어 음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양으로 바뀌게 되잖아? 그래서 팔자걸음이 좋다고 할 수 없는거야."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은 뭐가 나빠지는데?"
"아직까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로 인해서 골반이나 고관절의 변형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럴수도 있겠네."
"또 배가 나온 사람이라면 배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펴고 걷게 되는데 이로인해서 배가 양이 될수도 있겠지. 그래서 배가 나온 사람도 좋을게 없다는게 음양의 원리에서도 나와."
"배가 나오면 요추가 더 전만될거야."
"사람이 몸이 아프면 상체를 수그리면서 몸을 움츠리게 되지. 이것도 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이래."
"그렇구나."
"오행은 목화토금수로 이루어지는데 여러가지 뜻이 있어. 한의학에서는 오행에 자연의 계절이나 음식의 맛, 인체의 오장육부 등 여러가지를 대입해서 해석을 하고 있어. 우선은 오행이 뭔지를 알려줄게."
"응."
"목(木)은 나무야.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생기가 돋잖아, 이걸 목에 비유하고, 뜨거운 여름은 화(火),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 그래서 토(土)로 비유하고 금(金)은 가을과 겨울 사이의 환절기를 말하는거야, 수(水)는 겨울을 뜻하지.. 이걸 인체의 오장에 비유하면 목은 간(肝)이야. 화는 심장(心臟), 토는 비장(脾臟), 금은 폐(肺), 수는 신장(腎臟)에 비유하고, 색(色)으로 따지면 목은 청(靑), 화는 홍(紅), 토는 황(黃), 금은 백(白), 수는 흑(黑)을 나타내."
"복잡한데? 이걸 다 외워야 하는거야?"
"외워두면 여러가지 좋은점이 있을거야."
"뜻을 알아야지.."
"목은 간이면서 청색이라고 했지? 간이 나쁜 사람은 파란색 음식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의미가 있어. 화는 심장이면서 홍색이니까 심장이 안좋은 사람들은 빨간색 음식이 몸에 좋은거지. 토는?"
"가만 있어봐... 토는 비장이고 황색이니까 비장이 나쁘면 노랑색 음식이 좋겠군?"
"맞아. 그런식으로 금은 폐와 백색, 수는 신장과 흑색으로 생각하면 되는거야."
"신기하네?"
"그렇지? 이런 색깔은 음식에만 해당하는게 아니고 얼굴빛으로도 구분을 하지. 예를들어 얼굴에 푸른빛이 보인다면 간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붉은빛이 보인다면 심장에, 노란빛은 비장에, 하얀빛은 폐에, 검은빛은 신장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하지."
"진짜로 얼굴색이 바뀌나?"
"나도 아직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구."
"그럼 음양오행은 끝난거야?"
"아니지.. 오행에 대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중요해. 서로 살려 주기도 하고, 서로 죽여 주기도 하는 관계를 알아야지."
"열심히 적을테니까 설명해봐."
"순서는 목화토금수로 하고 차례대로 진행되는게 상생의 원리야.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목생화, 즉 목은 화를 살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거야. 계절로 풀이 하면 봄은 여름을 살려주는게 되지. 그러니까 봄이 가면 자연스럽게 여름이 오는게 순리가 되고.. 오장으로 풀어보면 간장은 심장을 살려 준다고 해. 심장이 아주 나빠서 약을 쓸 수 없는 정도라고 할 때, 간장을 좋아지는 약을 쓰면 간장이 좋아지겠지만 더불어 심장도 좋아지는거지. 이렇게 심장을 좋아지게 하고는 심장에 대한 약을 쓰는거야."
"다른것도 그렇게 풀이 하면 되는거야?"
"그래, 상극이란 한칸을 건너 뛰는거라고 생각하면 돼.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이런 순서가 되는데 목극토, 즉 나무는 흙을 극하는거야, 흙 속에 있는 모든 양분을 나무가 흡수를 해버리니 흙의 입장에서는 손해라고 볼 수 있겠지. 계절에 비교하면 봄이 지났는데 여름을 건너 뛰고 바로 가을이 온다고 생각해봐.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잖아? 오장으로 보면 간장은 비장을 극하는거지. 간장이 많이 나빠지면 더불어 비장도 나빠진다는 원리가 되는거야."
"한가지가 나빠졌을때 그걸 고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그것 때문에 다른곳들도 모두 나빠지겠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이제 니가 설명할 차례야, 활법에 대해서."
활법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내가 배운 이론에 대해서 말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활법은 사람을 살리는 모든 방법을 말하는데, 요즘은 척추를 통해서 인체를 관찰하고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수기법을 말해. 수기법이니 만큼 다른것은 어떤것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하지. 척추를 통한 학문이니까 척추에 대해서 알아야겠지, 척추는 두개골 아래로 경추7마디, 흉추12마디, 요추5마디, 그 밑으로 천골, 미골이 있는데 천골은 다섯마디가 하나로 유합된 뼈고, 미골은 네마디의 뼈가 하나로 유합된 뼈야."
"그런건 우리도 배웠어. 인체에 대한 이론은 설명 안해도 될것 같은데?"
"그럼 실기를 해야 하는데, 설명만으론 좀 어렵고 직접 해봐야 하거든, 그럴려면 장소가 필요한데?"
"얼만한 장소?"
"사람이 누울수 있는 공간, 그 옆으로 우리 둘이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면 되겠지."
"그럼 여기서는 어렵고... 어디가 좋을까..?"
장소라는건 어차피 서로의 집밖에 없었다.
스무살 시절에 돈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결국 다음에는 집에서 보자고 하고는 술만 마셨다.
나는 현이가 학생이라는 신분이 부러웠고, 현이는 내가 사범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을 부러워했다.
가난한 시절이었고, 용돈이래봤자 차비 정도 였으니 월급을 받는다는게 부러울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