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법 이야기 5
"척추를 진단하는 방법인데, 양손의 세번째 손가락을 척추뼈 몸통의 양쪽 끝에 위치하도록 하고 두번째 손가락은 세번째 손가락을 살짝 덮듯이 위치하도록 하는데, 양손의 두번째 손가락이 서로 닿도록 하고 척추의 윗쪽에서 아랫쪽을 향하여 천천히 내려가면서 척추가 좌측 혹은 우측으로 측만이 되었는지를 알아보는거야."
"척추뼈 몸통을 만져보는 건가요?"
"척추뼈 몸통은 근육에 가려져서 우리가 만질수는 없어. 우리가 진단을 하는 것은 척추뼈의 극돌기를 만지는거야. 극돌기의 위치를 살핌으로서 척추의 변형 여부를 추측하는거지."
"그렇군요."
"보통 X-ray에 나타날 정도를 진단해선 안되고,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X-ray로 판독이 어려운 상태의 미세한 변형까지도 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하지. 그럴려면 대략 1천번 이상은 연습을 해야 할거야."
"네."
"한사람을 1천번 만져보는건 의미가 없고,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의 척추를 진단해봐야 해."
"알겠습니다."
수업을 끝나고 스승님께서 프린트 한장을 주시면서 내용을 무조건 외워야 한다고 하셨다.
프린트에는 척추 마디마디의 영역과 영향이 기록되어 있었다.
활법에 대한 교육은 주말을 제외한 매일 오전에 진행되었다.
오후 두시 반까지는 잠원동 한신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한신체육관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한신체육관은 한신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부담을 줄이고자 아파트 지하에 매트를 깔아놓고 태권도 지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사범으로 채용하는 방법으로 운영을 했다.
오후 3시부터 수련이 시작 되는데, 7세 어린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관원생이 대략 50명 정도 있었다.
수련시간 1시간 중에서 30분 정도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시키고 각각의 품새에 대한 진도를 지도하고서는 제자리에 앉게 한다.
"지금부터 모두들 상의를 벗어서 옆에 예쁘게 개어 놓는다."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는체 상의를 벗는다.
"이쪽부터 차례대로 한명씩 앞으로 나와."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는 스승님께 배운대로 흉추1번부터 척추를 진단해본다.
아이들은 키가 작기 때문에 척추 마디도 작아서 진단이 쉽지 않았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척추를 진단해보지만 잘못된곳을 찾지 못했다.
하긴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척추가 잘못될리 있을까마는 그래도 꼼꼼이 살펴봐야 했다.
"너는 지금부터 나머지 시간동안 자유시간이야. 놀아도 돼."
놀아도 된다는 말에 앉아 있던 아이들도 빨리 진단을 받기 원했다.
아이들에게 노는것 만큼 즐거운게 어디 있을까..
남은 아이들도 한명씩 엎드리게 해서 척추를 두세번씩 반복하여 진단해보았다.
학부형들에게는 미안한 방법이었지만 활법을 빨리 터득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스승님께 배운 내용을 다시한번 복습했다.
스승님의 숙제가 생각난다.
백혈구와 적혈구가 하는일..
다시 교보문고를 찾았다.
의학서적은 구입을 하지 않고는 내용을 볼수 없도록 포장을 해놨다.
정가를 보니 내가 구입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이 큰 금액이다.
살수도 없고, 내용을 볼수도 없고..
숙제를 어떻게 하나 고민이 생겼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을 향해 걷다가 문득 약국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없고 한산했다.
무작정 약국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뭘 드릴까요?"
나보다 10살 정도는 많을듯한 남자 약사님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뭘 사러 온건 아니구요, 뭐 하나만 여쭤보면 안될까요?"
"물어보세요."
"백혈구와 적혈구가 하는일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학생인가요?"
"학생은 아닌데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한건데요?"
"사실 제가 지금 활법을 배우고 있는데요, 의학서적은 너무 비싼데 포장이 되있어서 내용을 볼수도 없고.. 해서요."
"활법이란게 뼈 교정하는 건가요? 막 우두둑 소리도 내고.."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기술들이 있기는 해요."
"이왕 배우는거 잘 배워봐요, 그거 잘하면 병원에서 못고치는 것들을 고치기도 한다는데.."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먼저 백혈구. 백혈구는 혈액이나 조직에서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지. 항체를 형성해서 감염에 저항하고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혈액 속에 1제곱 밀리미터당 5천개~1만개 정도가 존재하지. 다음 적혈구. 우리 몸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려면 조직세포에 산소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산소를 구석구석까지 운반해주는 역할을 하는게 적혈구야. 간단하지?"
"그렇네요?"
"내가 지금 학생이 어느정도를 알아야 하는지 모르니까 일단은 간단하게 말해줬고, 혹시 더 궁금한게 있거든 물어봐."
"지금은 뭐를 더 질문해야 하는지 모르겠구요, 혹시 궁금한게 생길때 또 들려도 될까요?"
"그래, 언제든지 와."
약사님의 말투는 자연스럽게 반말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더 친해진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언제든지 궁금한걸 알려 주신다고 하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