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 이야기

활법 이야기 2

전통활법 2020. 3. 26. 01:43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마땅한 기술이 없었던 나는 스승님 밑에서 합기도 사범 생활을 하기로 했다.

태권도와 합기도 단증을 모두 소지하고 있었던 나는 스승님의 체육관에서 두가지를 모두 지도할수 있는 적합자였다.

왕소금으로 제자들 사이에서 소문난 스승님이 월급을 많이 주실 일은 전혀 없지만, 합기도 기술을 배우거나 특히 활법을 배울수 있을것 같아서 스승님의 제안에 동의를 한것이었다.

체육관은 서초동의 우성아파트 상가 5층에 있었다.

5층은 건물 옥상이면서 한쪽에 체육관이 위치하였고, 나머지 공간은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주말이 되면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이 많이 애용하는 장소였다.

체육관의 벽은 두꺼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롤라를 타는 학생들이 유리벽을 통해 체육관 안에서 운동하는 모습들을 쉽게 구경할수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아이들로 하여금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면 롤라를 타는 학생들에게 좋은 광고가 되었을텐데, 스승님의 방침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잘 가르치는것 보다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서 체육관을 그만두지 않도록 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체육관에서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스승님은 매일 롤라스케이트장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바둑을 두셨고, 스승님이 운동을 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에 내가 합기도 기술이나 활법을 배운다는건 매우 희박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체육관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활법을 가르치는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활법을 가르친다는 간판도 보이지 않았고, 어디서 가르쳐 주는지 알수가 없었다.

무작정 서울 시내를 헤매고 다니다가 문득 활법에 대한 책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활법에 대한 책을 찾던중 국제연맹 한국합기회 라는 곳에서 발행된 활법교본을 발견하였고, 책을 통하여 협회가 노량진에 있다는것을 알고는 바로 찾아갔다.

이곳에서 나는 활법의 대가이신 명재옥스승님을 만나게 되었고, 스승님으로부터 활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연맹 한국합기회는 명재남회장님이 계셨고, 나의 스승님은 부회장 직책을 가지고 계셨으며, 두분은 쌍동이셨고 스승님이 형님이셨다.

명재남회장님은 항상 점잖은 모습이었으며, 명재옥스승님은 항상 명랑한 분이셨지만 두분은 모두 합기도에 대하여 말로만 하는걸 싫어 하셨고, 후학들에게 몸소 직접 합기도를 시전하시며 가르쳐 주시곤 하셨다.

"와서 활법만 배우고 가지 말고, 도복을 가져와서 운동도 좀 하고 가도록 해."

나는 합기도스승님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들을 접할수가 있었다.


스승님께 어머니에 대한 말씀을 드렸더니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예전의 아픈 경험을 생각하시면서 거절을 하셨지만, 이내 같이 가기로 결정을 하셨다.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네, 나중에 직접 고쳐 드려도 늦지 않을테니 좀 더 배운후에 직접 고쳐드리도록 해."

심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씀에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에 저희 동네에 중국사람이 하는 한의원이 있었는데, 그분은 어머니를 보시고는 약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당연하지, 뼈가 제자리에서 이탈을 했는데, 침을 맞는다고 뼈가 제자리로 찾아 가겠어? 아니면 약을 먹는다고 뼈가 움직이겠어?"

"약이 없다고 해서 못고치는 병인줄 알고 깜짝 놀랐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줄 알구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병은 아닌데 단지 한의학적으로 고칠수가 없다는 뜻이었겠지.."

"그래도 좀 유도리 있게 말을 해줬으면.."

"중국사람이라면서?  한국말이 서툴렀겠지. 그래도 그사람은 꽤나 정직한 사람이었나보네."

"왜 그렇지요?"

"약이라도 처방 했으면 돈이라도 벌었을텐데.. 그냥 가라고 했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