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체육대회에 생긴일

전통활법 2019. 6. 2. 10:32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날의 일입니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창신초등학교는 올해로 103년이 되는 역사 깊은 학교랍니다.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습니다.

어차피 계획된 행사라서 연기를 할수는 없어서 그냥 진행되었습니다.

횟수별로 천막을 치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지요.

그러나 막상 체육은 할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앞쪽 천막에 모여서 노래자랑을 했어요.


나는 낮에 참석했습니다.

오전에는 일이 있어서 못갔지요.

접수대에서 참가 접수를 하고는 우리 졸업횟수 천막으로 갔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모두가 앞쪽 천막에 앉아서 노래자랑을 하고 있었으니 뒷쪽 천막에는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혼자 앉아 있는데 나처럼 뒤늦게 참석하는 친구들이 오더군요.

그래서 계속 뒷쪽 천막에 앉아서 몇몇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앞쪽 천막에서 동창 하나가 이쪽으로 뛰어 오면서 나를 부릅니다.

오랫만에 만났으니 얼굴을 보러 오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손짖을 하면서 빨리 와보라고 하는군요.


"ㅇㅇ이 다쳤어. 빨리 와봐."

"어디가 다쳤는데?"
"발목을 다쳤어."

발목이라는 말에 그저 단순히 삐었겠구나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발목을 삔것은 심각한 수준도 아니기 때문에 그랬죠.

그러나 발목을 삔게 아니었습니다.

발목은 반대편으로 꺽여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부러진게 확실했습니다.

다친 친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을 하지도 못했지요.

사방에서 한마디씩 합니다.

"고칠수 있는거야?"

"빨리 응급처치좀 해봐."

"부러진것 같아."


사방에서 하는 말들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럴때는 신중하면서 과감한 동작이 필요하거든요,

"여기 쳐다보지 말고 다른데 보고 있어."

자신을 보면 더 아플수도 있고, 놀랄수도 있어서 시선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발목을 잡고는 정상 위치로 순간적 교정을 합니다.

이어서 세밀하게 검진을 합니다.

부러진건 어쩔수 없어도 가능한 제자리에 위치하게 해야겠지요.

부목을 대고 붕대로 감아 놓으면 좋겠는데 재료가 없습니다.

"119 불렀어?"

"응, 곧 올거야."

"이쪽 발도 다쳤어."

다른쪽 발을 보려고 했지만 더 심각했던 다리를 땅에 놓을수가 없습니다.

다른사람에게 잡고 있으라기에도 조심스러워서 교정된 채로 잡고 있으려니 다른발을 볼수가 없습니다.

이때 119가 도착하고 다친 친구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노래자랑을 하던 앞쪽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계단에 앉아서 박수를 치고, 무대에서는 노래를 하고, 혹은 한무리의 친구들이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비가 오는 상태에서 친구가 뛰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졌다고 하네요.

그래도 두 발목이 모두 부러지기에는 너무나 운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동창들이 와서 나에게 한마디씩 합니다.

"교정은 잘된거야?"

"그래도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저 정도면 부러진거 맞지?"


병원에 간 친구는 어쩔수 없지만 노래자랑은 계속 이어지고, 남은 친구들은 다시 술잔을 부딛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병원에 같이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X-ray 찍었어?"

"아니 환자가 많아서 아직 기다리고 있어."

"혹시라도 의사들한테 응급처치 했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해줘."

"벌써 이야기 했는데?"


의사도 아닌 사람이 응급처치를 했다는 말은 의사들이 들어서 좋을게 없습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아픔이 될수도 있거든요.

"의사도 아닌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대면 어떡합니까?"

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좋은 일을 하려고 했던 마음이 마치 더 나빠지게 만들었다는 말로 변할수도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서 보호자로 갔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수술해야 된대."

"에구, 예상은 했지만 큰일이네.."

"그래도 누가 응급처치를 이렇게 잘했냐고 의사가 그러던데? 친구도 너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더라."

마음이 놓이는군요.


친구는 지금도 병원에 있습니다.

양쪽 발목이 모두 부러졌다니 당분간 걷지 못할겁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재활치료도 해야겠지요.

병원에만 있으려니 참 답답할겁니다.

그래도 많은 친구들이 문병을 가고, 음식을 만들어 주고..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속히 완쾌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