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공원에 오르면서..
오랫만에 낙산공원을 친구와 함께 걸었습니다.
낙산공원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는 곳입니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50년 전 쯤에 낙산에는 큰 성황당 나무가 있었습니다.
가지마다 노란천 빨간천 파란천을 매달아 놓은 나무는 그냥 봐도 무서웠지요.
왜 무서웠는지 이유는 모르겠네요.
언젠가 그 나무가 사라지고 낙산에는 시민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4층짜리 건물에 각 층마다 10호 혹은 12호까지의 집들이 있었고, 각 집에는 방이 두개, 그리고 다락방도 있었습니다.
등기평수로 11평이라고 했는데, 화장실은 건물 가운데에 따로 있었습니다.
공동 화장실은 아니었고, 건물 가운데에 각 호마다 한개씩의 화장실이 있었어요.
이런 아파트가 28개 동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변으로 개인주택들도 많이 있었구요,
사람들은 정말 바글바글이란 단어가 생각나리만큼 많았었고, 내가 다니던 창신국민학교도 한 반에 80여명씩 14반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주간 야간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낙산을 오르는데 숨이찹니다.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살았었는데, 아마도 낙산에 살았다는 이유로 기본 체력은 항상 유지했었던것 같습니다.
매일 오르내리고, 때로는 뛰어다니기도 했고, 하루에 서너번 왕복하기도 했으니까요..
고등학교를 다닐때쯤 낙산아파트가 철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철거된건 아니구요, 모두 철거되기 까지는 몇해가 지난걸로 기억합니다.
철거민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양으로, 다음에는 상계동으로, 중계동으로..
그때만해도 상계동 중계동은 허허벌판이었어요.
한번 가봤을 때, 너무 막막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무렵이었으니 주변에 교통편도 좋지 않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시장이나 슈퍼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창신2동으로 이사했습니다.
낙산공원 입구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공원은 새봄맞이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쁜 꽃들도 많아졌고, 나무들도 더욱 아름다워진듯 합니다.
낙산에 올라가면 서울시내의 일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남산타워도 보이고, 멀리 북한산도 보입니다.
시내를 메운 온갖 빌딩들과 아파트들, 조금은 답답해 보이면서도 시원함도 느껴집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공원을 돕니다.
꽃과 나무들 사이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전경을 구경하며 돕니다.
학생들이 몰려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병아리같은 유치원생들도 선생님을 따라 꽃구경을 합니다.
오랫만에 걸으니 쉽지가 않습니다.
공원을 한바퀴 돌아 아랫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은 계단으로 올라가봅니다.
계단을 오르는데 대퇴부가 뻐근합니다.
너무나 운동을 안했다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숨이 가파오면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서 맞는 시원한 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같은 코스를 다시 시작합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평지를 걷는 것은 그런대로 친구를 따라가겠는데, 계단에서 뒤처집니다.
두번째에는 친구는 계단으로 오르고, 나는 오름막길을 택했습니다.
다음에는 북악산을 가자는 친구의 말에 자신없어하는 내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한동안 걸어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5년쯤 전으로 생각됩니다.
친구들과의 산행에서 뒤처지는 내자신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무던히 걸었던 때였지요.
남산도 걷고, 청계천으로 광화문까지, 혹은 뚝섬까지 걷고, 북악산, 백사실계곡, 북한산둘레길 등등..
걷다보니 걷는것도 즐겁습니다.
즐거움에 체력까지 보강이 되니 얼마나 좋은겁니까.
걷는것은 스스로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혼자 걷는 것은 스스로의 반성도 하고 계획도 하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대략 3년쯤 걸어본듯 합니다.
어느날인가 걷는 것을 접다보니 다시 시작하기가 쉬운것은 아니더군요..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걸어보려 합니다.
서유석선생님의 신곡이 생각납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지금부터 이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