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법이야기 2편
** 수기법 이야기
2편 : 수기법의 역사
카이로프락틱의 역사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다니엘 팔머(Daniel David Palmer)에 의해서 창안되었으며, 1895년 어느날 환자를 치료하는데 우연히 몸에서 `뚝` 소리가 나면서 평소에 잘 들리지 않던 환자의 청력이 호전되었다고 하는데, 카이로프락틱 종사자들은 이 사건을 카이로프락틱의 창안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활법은 역사가 분명하지 않다.
서양의 저런 단순한 역사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
혹자는 조선시대 이황선생의 활인심방이 활법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끼워 맞추기식 역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억에는 1960년대 말에에 1970년대 초 중반까지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자리) 주변의 넓은 마당에는 가끔씩 차력을 보여 주면서 약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력의 신기함에 가끔 구경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들이 차력도 하고, 무술 시범도 보이면서 때로는 척추교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도 누구에게선가 활법을 배웠을 것이다.
활법은 서양의 카이로프락틱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활법은 무술인에게 전수되어 왔고, 그나마 고단자가 아니면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니 활법인들이 많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활법을 배운 무술인들은 저마다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였기 때문에 활법의 계보를 만들지 못했다.
지금도 연로하신 활법인들은 내가 하는 기술은 비법이고 남이 하는 기술은 사이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자신의 기술만 존중하다 보니 연합이나 통일을 이룰수 없고, 각자의 생각만으로 활법은 여러가지로 갈라지기만 했다.
내가 활법을 배웠던 1981년만 하더라도 활법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나라의 수기법은 통일이 되어 있었지만, 계파는 여러갈래였다.
그러나 현재에서 보면 활법외에도 수기법을 칭하는 단어는 굉장히 많이 있다.
활법외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수기법들도 그 원조, 처음 그 이름을 사용한 사람은 결국 활법을 배웠던 사람이란 것을 현대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물론 서양의 카이로프락틱을 배운 사람들 말고 말이다.